본문 바로가기

문화는 정치!/공연

미소-춘향연가/ 한국 관광형 공연의 으뜸




극장 외관이다. 시청역으로 가면 비교적 가까운데 서점에 들르느라 광화문역으로 해서 갔다. 꽤 많이 걸었지만 찾기 어렵지 않았다. 정동극장 가는 길은 도로 표지판에도 크게 걸려있다.




 정동길을 처음으로 걸어봣다. 개화기 외교 공관이 많이 들어서면서 근대 한국의 아픔과 동시에 역사가 서린 곳이란다. 우리를 빼앗겼던 곳에서 이젠 관광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으니 인생무상이다. 여하간 근처에 덕수궁,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관광의 보배들이 꽉꽉 들어차있다. 그 한가운데 위치한 정동극장은 학생, 직장인, 관광객 등 다양한 인구들이 오가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경관 속에 자리잡고 있어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아우르며 관광지로 손색이 없었다. 돌로 멋스럽게 지어진 정동극장 건물은 푸른 싹이 돋아나는 뜰과 썩 잘 어울렸다. 지하엘 내려가니 공연장이 나왔는데, 한복을 입은 관객안내원들이 따끈한 둥글레차를 권한다. 툇마루처럼 꾸며진 대기 의자들과 한 켠에 놓인 장구,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기념상품점까지. 여기, 좋다.

 

소책자. 다양한 언어로 되어 있다.

따뜻한 둥글레차 드세요.

 

 


 4시다. 몇 초의 오차도 허용치 않겠다는 듯 커튼이 열렸다. 소위 'Korean time'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공연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이건 꽤나 강한 인상을 줬다. 'Welcome to MISO!' 내 친구도 아직 도착 전이었고 왼쪽 좌석은 단체 손님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비어 있었다. 다행히 공연이 바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공연 관련 영상이 나왔다. 제작에 관여한 이들이 아주 멋진 영상기법과 함께 소개됐고, 연이어 줄거리가 나왔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중국어랑 다른 한문인데 뭔지는 모르겠다. 번체인가. 아무튼 한국인에게는 노래방18번처럼 친숙한 춘향을 외국인들이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인 듯.

 그렇다. '미소-춘향연가'는 철저히 관광용 한국 공연이었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중국어며, 일본어며, 영어 그리고 내가 말하는 한국어. 이 모든 언어들을 아우르는 언어로 공연은 진행된다. 바로 몸짓과 선율, 그리고 미소! 초반엔 몸짓과 선율만이 눈에 뜨였다. 정겹고 옹골찬 국악에 딱 맞아떨어지는 한국무용.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이 이 공연의 주요 언어라는 걸 알았다. 여성 배우들, 특히 춘향! 배우 오디션의 최고 조건은 아마 미소였을 거다. 보는 사람까지 행복해지는 환한 웃음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볼거리가 참 많은 공연인데, 한복도 정말 곱다. 안 그래도 고운 한복을 색색으로 리폼했다. 다만 전통을 파괴하는 것인가 아님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새로 차려낸 것인가,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공연은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한국의 멋을 집약했다. 이를 나열해봤다.

난타 : 전통악기의 신명나는 소리는 울림을 주기에 충분.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본 모습인가? '난타'를 보고 온 외국인이라면 한국 공연은 대개 '마냥 때려대는 모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전통공연에 등장할 만큼 한국적인가. 단순히 흥행한 공연을 짜깁기한 것은 아닌지.

판소리(창) : 춘향의 엄마처럼 분하고 있던 언니가 걸쭉하고 한이 서린 목소리를 뽑아낸다. 몽룡과 춘향이 이별하는 장면인데, 군대에 가 있는 남친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실력이 정말 좋으셔서 내가 괜히 다 으쓱했다.

한국무용 : 남성의 절도있는 춤과 곡선미가 우아한 여성의 춤이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단체로 연기할 때 어찌 그리 딱딱 맞는지.

사물놀이 : 가장 관객과 소통하던 시간이었다. 기예에 가까운 상모돌리기와 휙휙 도는 모습이 신기했다. 익살스런 연기. 외국인 관광객을 무대로 데리고 나와 추억을 선사했다. 맘 같아서는 '얼쑤, 좋다!' 외치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어려서...음.

국악 연주 : 울려퍼지는 음악이 직접 연주되는 것인지 처음에는 몰랐다. 공연이고 자시고 저 국악 연주를 좀 더 들었음 싶었다. 그런데 때 마침 무대로 나와 연주를 보여줬다. 피리의 고운 소리가 봄과 어울린다.

탈춤 : 살짝 나왔다. 익살스러운 민중 탈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몽룡이 암행어사로 등장하는 씬에 쓰여 극적 효과를 더했다.



공연 중 사진 촬영은 불가능하며 공연이 끝난 후 무대를 찍어봤다. G20 행사 때에도 상징으로 쓰였던 청사초롱이 걸려있다.





공연이 끝나고 1층 쌈지마당(뜰) 배우들과 뒷풀이 공연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부랴부랴 달려간 그곳에서 춘향과 몽룡 배우분이 아이와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아이고 곱다. 남성 배우분 어디서 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