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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정치!/영화

영화 <쿠바의 연인> 연애결혼에 대한 근거있는 지지






쿠바의 연인
감독 정호현 (2009 / 한국)
출연 오리엘비스,정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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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는 사람들은 그리 오래 못 가더라구"
 사랑은 둘이서만 하는 게 아니란다. 지난 목요일(1월 13일) 에 찾은 정릉시장의 금은방 아저씨가 그러셨다. 요즘 가열차게 하고 있는 전통시장 탐방 중이었다. 전통시장 상인회도 찾아가고, 물론 상인분들께 무작정 들이대서 이것저것 묻다보면 기본적인 상점이나 시장 정보가 아니더라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얘기도 많이 하시곤 한다.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정릉시장은 인정시장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그런 점도 있지만, 쌀쌀한 바람이 불어닥치는 생활경제의 중심에 놓여져있었다. 예전엔 밥 먹을 시간도 없던 금은방이, 요새는 손님이 한 명 찾아온다고 한숨을 쉬시는 아저씨는, 말벗이 필요하셨는지 20대 초반의 젊은 우리 셋을 두곤 인생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하셨다.

 우리가 아직 결혼을 입에 올릴 나이는 아니지마는 아저씨는 결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셨고, 우리는 흥미있게 들었다. 20살이 된 남자애에게, 남자가 성공하려면 처가집이 돈이 많아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또 23살이 막 된 나와, 남자애와 마찬가지로 20살이 된 여자애에겐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일련의 이야기를 흥미롭고 유심히 들었다. 금은방만 40년 운영하셨고, 직장을 가진 아들을 두신 아저씨는 젊어보이셨지만 나이는 꽤 있으신 것 같았다(당연히 우리 부모님보다). 저렇듯 당당한 태도로, 젊은 아이들을 앞에 두고 자신이 그동안 깨우친 인생의 진리를 전해준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험과 세월이 축적한 지혜는 귀기울일 가치가 충분하므로.

 그런데 듣다보니 의문이 돌았다. 내 연애는 어떤가? 아저씨는 연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셨다. 그저 결혼의 조건과 상대방의 집안, 돈벌이 등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많으셨다. 나는 지금 대학교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인생 첫 연애를 하고 있는데. 어린 생각으로는 결혼까지 할 것 같단 말이다! : ) 그런데 나나 남자친구나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났고, 후에 우리가 직업을 가지면 벌만큼 벌겠지만(무슨 자신감인가...) 그건 불확정성이 가득한 세계고_ 여하간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가꿔나가는 것이고 믿음은 있지만 왜 그런 거 있잖은가, 궁합 같은 거 보고 좋지 않다고 나오면 별 거 아니라며 위안하면서도 한 편으론 찜찜한 거. 우린 궁합은 잘 나왔었지만(또 언제 봤대?)
이 인생 선배 아저씨의 입에서 미래를 보증받고 싶었다. 마치 금은 보증서처럼?

 그래서 말씀을 다 듣고 나오기 전에 물었다.
"아저씨, 연애는요? 대학생 때요. 그러니까 다른 조건은 보지 않고 오직 서로...."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는 단언하셨다.
"결혼이 사랑만으로 될 게 아니야. 연애하는 사람들은 죄다 그리 오래 못 가더라고. 돈이 있어야 돼. 둘이 합쳐 연봉이 ---- 정도는 되야?"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라는 후배들의 타박을 들으며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금은방을 나왔다.

 성격 같아서는 아저씨에게 반론을 펼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대신 나는 나는 월요일에 본 <쿠바의 연인>을 반론의 근거로 생각했다.
 그들의 믿음과 오리엘비스의 말을.




쿠바의 연인 from withblog on Vimeo.


"연애결혼"에 대한 근거있는 지지. <쿠바의 연인>

 남자친구가 군대에 있는 나는 명목적으로는 연애를 하고 있음에도 거리에 팔짱을 끼고 다니는 커플들을 질투하는 이상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래서 처음 위드블로그를 통해 훌리아와 오로의 비메오 영상을 봤을 때 제대로 '염장' 제대로 받았다. 또 다른 연애물과는 다르게 예고편 편집이 매우 깔끔했고 감각적이었다. 그런데도 뜨거움이 느껴졌는데, 담백함 속에 그런 뜨거움이 느껴지는 건 예고편에 나오는 쿠바의 풍광 때문일듯. 이렇게 눈이 즐겁고, 그 어떤 의아함도 잠재워버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기대됐다. 게다가 좋은 전시회가 많이 나오고 도슨트 교육프로그램 때문에 자주 드나들었던 아트선재센터 영화관 씨네코드 선재의 시사회라니 ㅠ_ㅠ! 씨네코드 선재는 지하1층인데 단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좋은 인디영화를 배급하는 시네마달의 선택이니 암말안해도 뭐.





 알고보니 이번 시사회는 "'연애기원파티' - 새해엔 연애하자!"라는 취지에서 진행되고 있더군요. 보고 약간 아찔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연애를 얘기하고자 한창 연애중인 친구랑 가려고 했으나, 삼청동을 엄마와 함께 놀러가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고자 엄마와 갔거든요. 그런데 저런 제목이라니ㅋ_ㅋ

 괜한 걱정과는 달리 영화는 연애를 예찬하는 내용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었습니다. 특히 영화는 본래 쿠바의 현실과 그 속에 살고 있는 한인 한 분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는데 감독님의 연애 사업 때문에 방향이 틀어진 것이기 때문에(ㅋ.ㅋ) 초반엔 주로 쿠바의 현실이 나옵니다. 이전에 <철학개그콘서트>를 읽으면서 '플라스틱 히피'라는 개념을 알게 됐는데, 철저히 자본주의 체계에 살면서도 체게바라를 티셔츠에 새기고 혁명을 예찬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체게바라를, 또는 혁명을 소비하는' 태도 등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2010/11/14 - [문화는 정치!/독서] - 철학이 있다면, 필시 농담도 있다. <철학개그 콘서트>) 영상을 통해 쿠바의 현실을 마주하며, 마냥 이상적으로만 쿠바를 봤던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안타깝게도 현 우리사회는 서로가 감시하는 사회야.'
'공산주의가 아니라 질투주의야, 질투.'
'혁명 안에서는 모든 권리가, 혁명 밖에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쿠바인들이 짚어내는 현실은 매우 날카롭더라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연 이만큼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있을까요? 하지만 그들의 삶을 사랑하고 예찬하는 유쾌한 태도에는 반해버렸습니다. 아래의 멘트는 버스에 탄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모든 승객들이 함께 노는, 가슴 벅찬 장면에서 나온 겁니다.(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님도 가장 좋아하는 씬이라고 말씀하셨고요!

'버스에 탄 이들 만세
버스에서 내린 이들 만세
버스에서 내리고 탄 이들 만세

버스 안내양 만세
버스 운전사 만세
카메라맨 만세'



관객과의 대화 도중 계속 서로 의지하던 오로&호현 부부! 정말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