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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정치!/영화

영화 부당거래, 사실 진짜 꾼은 언론이다



류승완 감독이 2010년 대한민국에 대해 말하는 방식

부당거래 말 말 말
"허위가 계속되면 그게 권린줄 알아(류승범)"
"원래 적군보다 아군이 무서울 때가 있는 법이다(천호진)"
"너네같이 법 안 지키는 사람이 더 잘 먹고 잘 살아!(황정민)"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우린 열심히 하잖아요(유해진)"
"사람이 잘 될 때 틀어지지 안 될 때 틀어지지는 않아"




우선, 기사부터 거들떠봅시다.

#사례1. 배우 김규리에 “광우병 생각 바뀌었나” 사상 검증성 질문
총리실 촛불백서 만들면서 시민에 ‘사상검증성’ 설문
‘견해 변화? 이유는?’ 물어…관련자들 “사상자유 침해”
한겨레
고나무 기자 10월 29일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관련 백서 발간을 준비하며 정부 비판 글을 개인 미니홈피에 올린 배우 김규리(개명 전 김민선)씨 등 시민과 누리꾼, 전문가 등에게 ‘입장 변화’ 여부를 묻는 설문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설문 대상자들은 “사상의 자유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하략) 


#사례2. 가짜 호재성 기사 써주고 돈받은 기자 영장
머니투데이 김성현 기자 10월 31일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김주원)은 허위 내용의 호재성 기사를 써주는 대가로 코스닥 상장업체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경제전문 인터넷신문 N사 기자 장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하략)


 


 

의 계급적, 정치적 위치를 이해하고, 지금 있는 내 자리에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일견 당연해 보이는 전제가 있다. 바로 현실을 똑바로, 있는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현실이 너무나 잔인해서일까? 현실을 거부하려든다.

이같은 현실 인지 장애는 특히나 엔터테인먼트에 있어서는 쥐약이나 마찬가지다. 영화나 드라마가 무겁고 팍팍한 소재를 택하는 것은, 흥행에 관심없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요즘처럼 사회가 답답할수록 이런 증상은 심해진다. 로맨스나 코미디가 극장에 판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또 감정적 특수성으로 눈물을 쏙 빼는 휴먼스토리가 각광을 받고 있다. 영화와 같은 문화 컨텐츠가 현실에 대해 말하는 방법은 우회적이고, 권선징악적이며 계급상승의 욕구를 담고 있다. 조금이라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는 머리가 아프다, 지루하다 등의 수식어를 달아 관객들의 입소문에서 악평을 받기 마련이다.

신문방송학도인 나는 이번 학기 학교에서 문화연구 관련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비판커뮤니케이션이 맥을 못 추는 학문적 환경을 언급하셨다. 자본주의의 모순성과 권력화를 비판하면서 마르크스를 전제로 민주화를 쟁취하려는 비판컴은 80년대만 해도 사회적 현실과 맞물려 인기 학문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대로 사회 풍토에 상당히 영합하는 우리 학문계에서는 점점 비판컴에 대한 공급도, 또 수요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적군보다 아군이 무서울 때가 있는 법이다"


이런 와중에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가 개봉했다고 해서 위드블로그의 도움을 받아 지난 29일날 영화관에서 보고 왔다. 보기 전에 이런저런 사전 정보를 얻기 위해 영화 홈페이지에 접속했는데, 여러 광고를 제치고 내 눈을 잡아끄는 광고가 있었다. 류승완 감독의 트위터를 통해 일반인들이 '일상 속 부당한 일'을 낱낱이 밝히는 공모가 있었다는 것. 몇 명을 선정해서 표를 주기도 하는 이벤트였다고 한다.

물론 영화를 보기 전이었지만 이 광고 몇자만 봐도 류승완 감독이 추구해 온 방향과 이 영화가 말할 궁극적 얘기도 유추할 수 있었다. 그의 전작 <다찌마와리-악인이여 급행 지옥 열차를 타라>때부터 느꼈지만 그는 딱 내가 지향하는 생각을 실행하고 있다. 다찌마와리때에는 엄숙주의에 침뱉기! 키치적(뭐 쌈마이래던가)인 것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키치로 에워싸인 한국에 대한 비판 또는 애정어린 시선? 여러가지가 더 있겠지만 내가 주목하여 본 것은 이런 것이었다. 부당거래에서는, 사람들의 공모 속에 칭송받으며 일상과 동거하고 있는, 그래서 오히려 더 악랄한 악마를 알아보라는 것'이거 정말 부당하오!' 너는 지금 부당한 현실에 처해있는거야. 근데 왜 가만히 있니? !

부당거래 공식 홈페이지(http://www.baddeal2010.co.kr/)를 캡처한 모습입니다.
네 개의 배너 중 맨 아래 것, 일상 속 '부당한 일 공모' 모바일 이벤트 보이시나요?


영화를 보고 나니 검찰-기업-언론-경찰-정부 등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그룹의 커넥션이랄지 어두운 면들을 밝힌 것도 어두웠지만, 주인공들이 대부분 삶을 마감하는 설정 또한 어두웠다. 이 영화에서는 절대적 선도 악도 없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아름답게 포장하면서 미화하는 사회의 전형적 모습을 거부하고 상당히 현실적인, 그래서 불편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보는 이들을 뜨끔하게, 그리고 반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선도 악도 없는 이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주인공들을 보면 상당히 사소한 욕심에서 시작된 행위들이 참혹한 결과를 불렀다. 이 감독은 인간의 이면, 위선을 꼬집고 뒤집는 솜씨가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인데, 물론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사회 지도층이 국민을 상대로 조작을 한다는 설정' 때문에 그런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우스갯소리로 "그럼 뉴스를 청소년 관람불가로 하지 그랬어?" 하는 말도 떠돌고 있다. 또 이번 학기 듣는 수업 중 정치커뮤니케이션 수업이 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신문을 펼쳐보면 수업에 배웠던 이론적인 내용과 연관되는 보도가 많아 색다른 기분이 든다. 위에 두 가지 신문 기사들 중 우선 정부의 촛불백서 발간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고, 장차 언론인을 희망하는 이들이 많은 신문방송학과 학도들에게 언론의 부패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위 사진은 씨네21에서 퍼왔습니다.

[주성철의 가상인터뷰]에서는 주양 검사의 흥미로운 가상 인터뷰가 보인다.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1003001&article_id=63426)



이 영화의 많은 홍보 카피 중에서 가장 감각적이고 섹시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것이다 : 각본쓰는 검찰,  연출하는 경찰, 연기하는 스폰서. 영화의 특성인 각본, 연출, 연기를 현실에 그대로 대입한 재기가 엿보였던 것이다. 또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영화의 스토리,  아니 나아가 현실을 비꼬고 있잖은가.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자 한다. 제작자는 언론(!)

사실 검찰, 경찰, 스폰서 뒤에 자리한 것은, 그들을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은 언론이랄 수 있다. 우선 대통령가지 간섭한 아동 성폭력 사건을 어서 해결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 국민을 눈속임하려던 경찰 수뇌부(천호진 분)의 생각의 뿌리. 언론은 이 때 어떤 검증이나 의심도 없이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했고, 심지어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덧붙여 사건을 호도하기도 한다. 스폰서(유해진 분)라는 배우가 열연할 수 있는 무대는 언론이었음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또 스폰서의 직업은 건설회사다. 이 또한 주목해봐야 할 것인데,  신문을 가만 보면 가장 금싸라기 광고 지면은 신축 건물, 상가, 쇼핑 단지 광고들로 가득차 있다. 신문의 광고 수입을 틀어쥐고 있는 이들이다보니, 이러한 건설 회사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는 어렵다. 신문을 보라. 건물값에 영향을 미치는 보도는 광고주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장면 기억하시죠? 각종 접대와 뇌물이 오고가는 현장입니다.

기자의 이런 모습은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언론의 보도 행태도 마찬가지였고요,


즉 대국민 상대로 이벤트를 벌였던 공간은 현재 언론의 공정, 객관적 보도의 약화와 권력을 견제하는 기능의 상실 내지는 약화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언론이 이상적인 모습에 맞게 진실만을 보도하고, 최소한 진실에 준하는 보도를 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영화에서 언론이 이렇게 허술한 장치로 그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거다. 마지막까지 언론은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낸다. 검찰에 의해 대접받고 사건을 곡해하던 기자가 이번엔 또 검찰에 대한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서 기자가 검찰에 대한 내용을 폭로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부당하지 않으나, 기자의 이중적 면모와 권력에 기생하는 모습, 이익을 좇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있음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

이렇게 영화에서는 경찰, 검찰, 스폰서 못지않게 사건에서 언론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배우의 차원을 넘어서). 또한 영화는 언론을 다른 주체 못잖게 매우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어 비판의 화살을 겨누고 있음이 분명함에도, 언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마 영화 홍보 때문이 아닐까. (부당거래는 홍보를 위해 으레 영화들이 그렇듯 언론시사회를 개최했다. 현재 여러 언론에(인터넷 매체를 포함) 광고를 게재하고 있으며, 언론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테마]노찾사 20주년 기념 공연 - SBS 뉴스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20주년과 관련된 동영상에서 인터뷰이였던 노찾사 관계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삶의 현실을 깊이있게, 아름답게, 진실되게 담아내는 것". 이것이 그들 노래의 지향점이란다. 부당거래에서 보여준 현실이 씁쓸하고 눈 돌리고 싶지 않으려면. 진실된 현실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