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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정치!/독서

철학이 있다면, 필시 농담도 있다. <철학개그 콘서트>




철학개그 콘서트 (양장)
국내도서>인문
저자 : 토머스 캐스카트(Thomas Cathcart),대니얼 클라인(Daniel Klein) / 김우열역
출판 : 럭스미디어(럭스키즈) 201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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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개그로 만든 개그콘서트


철학이 가장 멋있을 때는 언제일까. 지금만큼은 학자를 들먹이며 세부적 특징을 가리고 계파를 나누는 학문적 담론에서 자유로워보자. 사실 일반인들에게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인 철학이 일상생활에서 변주되는 방법은 바로 해학과 골계미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조금 비틀어보는, 그러면서도 총체적 이해를 밑바탕에 깔고선. <철학 개그 콘서트>를 위드블로그에서 만났을 때 이 책이 내 사고를 확장시켜줄 거라 생각했다. 제도권 교육 안에 있을 때엔 일부러 찾아봤던 철학책을 대학 와서 제멋대로 살면서 백안시했던 참이었다. 더 이상 관념적인 것을 동경하지 않는 내가 무서워지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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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개그콘서트'라. 제목부터 관심을 확 잡아끈다. 영업 때문에 워낙 이동이 잦고 바쁘셔서 휴대하기 편하고 얇은 책을 선호하시는 엄마도 배송된 책 제목을 보고는 먼저 보시겠다며 관심을 보이신다. 책의 저자인 토머스 캐스카트와 대니얼 클라인은 둘 다 '하버드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에 활발하게 철학 강의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토씨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데 한국 공영방송의 인기 개그프로그램을 제목으로 간택하는 전략적 사고를 할 리 만무하잖은가.

이 책의 저자인 토머스 캐스카트Thomas Cathcart, 대니얼 클라인Daniel Klein
출처 : http://www.platoandaplatypus.com

저자들의 황당한 사진을 보니 그럴 가능성이 있어뵈긴 하다. 살펴보니 원제는 'Plato and a Platypus Walk into a Bar(플라톤과 오리너구리가 술집에 가다'이다. 처음에 이 책이 단순히 좀 진지한 철학책을 마케팅의 차원에서 개그적 요소를 좀 더 부각해 포장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사람들 완전 웃기려고 작정했다. 코미디언들에게 대본까지 써 준다고 하니 말 다했다.


철학이 있으면 필시 농담이 있다
-책의 전제와 목적을 중심으로 알아볼까!




p195
디미트리 : 이제까지 우리가 이야기한 게 명확해졌어
타소 : 어떤 식으로?
디미트리 : 당신이 '철학'이라고 하는 걸 나는 '농담'이라고 한다는 얘기지.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할 때, 그리고 끝날 때 항상 나오는 디미트리와 타소의 대화.
디미트리와 타소가 도대체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다.
이들의 대화는 식사 전 애피타이저와 식사 후 티타임 또는 디저트로 기능한다.
하나의 이야기에만 귀속되느냐, 그렇게 단절되는 성격은 아니다.
한 식사의 디저트는 다음 식사의 애피타이저로 기능한다.
그리고 vice versa.




우선 저자들은 철학과 개그를 동일선상에, 아니 적어도 든든한 동료도 놓는다. 이 이유를 들어가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철학과 개그는 동일한 충동에서 비롯된다 : 인식 체계 혼란, 세계관 전복, 불편한 진실 노출(14p 요약 발췌) ' 그대들 말대로라면 철학이 삶에 대해 말 하는 고상한 방법이요,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농담 따먹는 개똥철학은 조금 더 편한 철학이 되겠다. 아니, 이쯤 되면 철학과 농담을 구분지을 필요도 많지 않은 것 아닌가?

형식적 측면에서도 이 책은 수많은 철학 책들이 지니는 강박을 타파하고 있다. ①진지해야 돼? ②순서대로 해야 돼? 아니, 전혀 그럴 필요 없단다. 글 전체를 흐르는 재치있고 경쾌한 말투에서부터 독자들을 격식없이 친구처럼 대하는 '가벼움'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설명이 조금 길어질라치면 혹시나 못 따라올까 살펴주기도 한다.(97p 흐름은 잘 따라오고 있겠지?) 또 으레 철학책이 그러듯이 연대기식으로, 사상의 태동 배경부터 짚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이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의문의 순서대로 배치했단다. 이들의 작업은 학에 덮인 답답한 더께를 벗어버리는 것이 목적인 듯 하다. 가장 정상에 있는 교수들이 이런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깊다. 고맙다.

58p 재미없다고요? 좋아요.
하지만 우리가 철학과 농담이 완전히 똑같다고 한 적은 없잖아요?



그런데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들의 철학개그가 철학 사교 모임에서는 환영받을 지 몰라도, 보수적인 학계의 질타를 받지는 않았을까? 되도 않는 농담으로 철학의 위신을 떨어뜨리느냐는 호통 말이다. 실제로 이들의 유머는 따로 떼어놓으면 철학책에 수록되어있을거라고 믿을 수 없는 얘기들이 많다. 책을 다 읽으니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이들이 철학개그를 선택해 수록하는데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핵심을 비켜난 개그는 가차없이 지적한다. (30p 그러나 이 풍자들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개그가 핵심을 비켜갔다는 것.) 뿐만 아니라 농담의 철학적 변용도 보인다. 평범한 농담 뒤에 내용을 덧붙여 실용주의적 농담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하고. (107p)

왜 하필이면 철학을 이해하는 데 개그를 쓰는가. 첫번째 이유는 사교 파티에서 인기인이 되기 위함이다! 지적인 개그를 구사하는 사람이라,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웃기기까지 한데 뽐내지않는 지식이 녹아들어있다. 미국처럼 파티가 일상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려나? 파티용 철학개그를 바꾸어말하면, 철학개그의 일상적인 쓰임에 관심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71p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파티에서 교묘한 패러독스를 이야기하면 폭소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248p 발리셀라를 파티에서 대단한 인기인으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위와 같은 명제다)

'나는 파티용 철학개그 필요없소' 하며 시크하게 나오는 당신이란. 차도녀 차도남들을 위해 농담과 철학이 손 잡은 진짜 속내를 파헤쳐 드리리다. 우선 이들은 관념적 철학 사상들을 나열하는 것 보다 농담을 통해 핵심을 간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 (p139 이야기가 다소 관념적인 듯하니 다음 이야기로 핵심을 알아보자) 철학자가 아닌 이상 핵심만 이해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꽤나 유용한 방법 아닌가.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이 욕먹어 싸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 편이 철학이라면 아예 손사래치는 것 보다야 백 배는 낫다.  또 쓸데없이 사상을 둘러싼 애매모호함이랄지, 어렵다는 편견 등, 즉 '안개'를 걷어내 준다고 생각한다. (155p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뉴에이지 사상의 안개를 거두어줄 농담의 대가들이 있다) 이 뿐인가. 농담을 이용하면 사상에 매몰되지 않고 철학을 자기화시키는 작업이 용이해진다.(239p 이번에도 농담을 보면 한 걸음 떨어져 볼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전제는 이것이다 : 철학이 있다면, 필시 농담도 있을 것이다. (p248 이 책 저변에 깔려 있는 명제가 옮다는 게 이번에도 드러난다. 메타철학이 있다면, 필시 메타농담도 있을 것이다.)



유쾌하긴 해도, 만만하지는 않다
-문화권의 차이와 농도짙은 성인농담


오해하지 마라. 이 책은 한 번도 철학 생초짜를 위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 필자는 그렇게 착각을 해 버리고 말았다. 개그랑 접목을 했으면 당연히 본격적 철학 공부를 하기에 앞서 몸 풀어주는 목적이겠지. 그런데 알고보니 단순히 철학을 대중화하려는 도서는 아니다. 철학개그론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든 것 같다. 내 생각에 추천의 글을 쓰신 철학박사 분 께서 이 책이 이제 막 철학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쓴 것은 둘 중의 하나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책을 다 읽지 않고 제목만 보셨거나, 아니면 저자들과 생각을 너무 같이 한 나머지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으셨거나.

그도 그럴것이, 이들이 제시한 농담으로 웃으려면 어느 정도는 곱씹어야 할 것이다. 유쾌하긴 해도 그다지 만만하진 않다.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농담들마다 적어 놓은 물음표가 10개는 되는 것 같다. 철학적 지식의 부족은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다. 왜냐면 설명이 어느 한도 이상으로 길어지지 않는다. 농담을 매우 즐기고 에둘러 말하지 않고 핵심만 찔러서 조금이라도 길어길라 치면 유머로 돌린다. 또한 조금이라도 관념적일라 쳐도 유머로 넘어가 핵심을 뚫는다. 이게 더 알고 싶어하는 독자에겐 답답하게 느껴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너무 짧아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철학개그를 이해하기에는 딱 알맞은 정도의 지식을 충전할 수 있다. 논리학에서 연역논리와 귀납논리를 설명하면서 연역과 귀납이 뭔지는 설명하지 않는 식으로 어느 정도 기본기를 갖춘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문제는 유쾌한 하버드 교수님들이 사는 미국과 우리 한국은 문화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문화코드가 다르다는 것은 웃음코드가 다름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아주 쉬운 농담도 우리에겐 서구권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지식이 된다. 난 유대교/신교도/침례교도 종파 간 차이에서 유발되는 농담은 도무지 모르겠다. 유교/불교/도교로 하면 모를까. 때문에 책 내용의 2/3 정도 지나면 퀴즈도 총 두 개 나오는데, 이런 퀴즈 없어도 책을 읽는 내내 은근히 시험에 드는 기분이다. 이해하지 못하면 웃을 수 없다. 철학이 없으면 농담도 없는 거다.

더불어 절대로 어린 자녀에게 '너 개그콘서트 보지 말고 철학 개그콘서트 봐!'라고 권할 수는 없는 책이다. 책의 농담들은 순도 85%의 성인 농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122p의 '사디스트는 황금률을 따르는 마조히스트다.'라는 명제는 그나마 건전한 편이다. 노골적인 표현은 없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이것이 야하다는 걸 안다. 또 한참 사회화되는 어린 아이들에게 정치적, 종교적 등으로 어긋나는 걸 잃혀서 좋을 건 없다.

167p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이 아니라는 건 인정한다.
어쩌겠나, 철학자란 이런 존재인 것을. 배 째든지!

따라서 나는 추천의 글을 쓴 철학박사님과는 다르게 이 책을 어느 정도의 철학적 배경지식을 지닌 고등학교 학생 이상의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다. 철학적 사유가 엿보이는 유머를 구사할 수 있을거다. 또는 철학을 너무 엄숙하게 공부하려는 태도를 지닌 학생들에게 추천해도 좋을 것 같다. 철학개그의 감을 잡고 싶지만 이 짧은 설명마저 싫을 때에는, 농담만 읽어내려가다가 관심있는 부분에서만 설명을 읽어도 좋을 듯 하다.(연대기적으로 정렬하지 않은 저자들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랄까?)

웃기다는 점 보다도 나는 이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이들의 철학 책이 조명하는 철학의 영역이 동양, 서양 철학을 아우른다는 점(불가지론부터 선종까지). 물론 서양인들이니까 철저히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쓰여지기는 했다.  그래서 그들의 유머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잖나. 하지만 동서양의 접점을 찾는 모습이랄지 (150p 들리는 말에 따르면, 19세기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불교를 철학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불교 종파인 선종의 공안을 비중있게 다루기도 하는 모습은 노력이 엿보여서 인상깊었다. 이 책에서 고대 도교 철학자 장자의 이름이나 돈오라는 단어를 볼 줄은 몰랐다. 그러나 서양적 사고에서는 문화적 문제로 이 개념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분명 이 책을 다 읽고 덮으서 스스로 질문이 생기고 철학에 대한 관심이 생길 것이다. 심각하게 진지하지 않은 방식으로. 유쾌하고 흥미롭게 말이다.

75-76p
디미트리 : 귀엽군. 하지만 이게 삶의 근본적인 의문들을 해결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 거지?
타소 : 음, 네가 델포이에 가서 아폴론에게 이렇게 물었다 치자.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그랬더니 아폴론이 이렇게 대답했어. "인생은 소풍이야. 소풍은 재미있지. 따라서 인생은 재밌어." 논리를 알면 잡담할 거리가 생기는 거라고.


뱀발 1. 결론 부분이 아쉬웠다. 연대기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은 나의 지식 부족을 탓한다 하더라도, 이리도 친절하게 용어해설이 있다는 정보를 책 앞머리에 살짝만 알려줬어도 끙끙 앓지는 않았을텐데. 다 읽고 난 후에 생각지도 않은 용어해설이 빼곡히 정리되 있는 것을 보니 봤던 내용들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못내 아쉽다. 개념만 따로 보려니까 어렵잖은가.

뱀발 2. 친절한 번역설명은 인상깊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밝혔다시피, 김우열 씨는 '번역하면서 무척 애를 먹었다.' '설명하면 김새버리는 유머 번역'에 '문화적 차이'까지. 번역가가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전혀 어색함 없이 읽혔다는 건 번역가 분의 뛰어난 실력 덕분이 아닐까? 그대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오타 하나 발견! 130p에 훌륭한 공무원이pubic  servant라고 나왔다. 농담 부분이 훌륭한 기녀great pubic servant인데, 공무원은 public servant라 써야 웃기는 거 아닌가.

뱀발 3. 오랜만에 읽은 철학 책이 뜻밖에 내 고민들을 위로해줬다. 대표적인 건 사르트르의 자기기만 개념.
p164
'나는 특성이 고정돼 있는 대상일 뿐이야'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자신을 대상으로 보는 한 자기 방법은 자신을 사회적 역할과 동일시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르트르에 따르면 자기기만이다. 게다가 좋지도 않다.
그리고 책을 통해 알게 된 '플라스틱 히피' 개념도 내 자신을 뒤돌아보게 했다.
p163.
1970년대의 '플라스틱 히피'. 가령 비틀스 머리를 한 월스트리트 은행가들


유투브에서 이 책에 관한 재미있는 동영상을 찾아서 여기에 참고로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