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정치!/독서2010.11.24 16:41



소도시 여행의 로망
국내도서>여행
저자 : 고선영
출판 : 시공사(단행본) 201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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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tage
지난 시대에 속하는; 오래되어 가치가 있는

빈티지의 뜻을 정확히 몰랐다. 빈티난다는 건가? 여하튼 낡고 헤진, 오래된 것들의 특성을 설명하는 수식어라는 건 알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런 설명이 나온다. <소도시 여행의 로망>은 이처럼 시간이 고여있는 도시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창한 유적지나 떠들썩한 여행지가 아니라도 좋다.
여행은 단지 그 곳의 지역성과 자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 떠나는 것.
소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그래서 더 좋은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 여행 좋아하는 부부의 낭만도 얻어가고 싶다.


이 책 또한 위드블로그의 도움을 받아 읽게 됐다. 이곳을 통한 독서가 좋은 점은 신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러 주간 베스트셀러 류의 책은 쳐다도 보지 않던 나였다. 유행에는 다 이유가 있을진대. 마음을 고쳐먹고 있다. 곧 남자친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빌려 보려고 한다.

여행 서적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많이 못 해 본 우물 안 개구리이기도 하다. 거기다 각종 정보로 빼곡하게 넘쳐나는 여행 책의 완벽성과 꼼꼼함이 무서웠다. 그런데 이 책이 내 마음을 끈 것은 ‘소도시’라는 타이틀이다. 일상의 진정성을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어구로 삼은 내게 작은 것의 소중함은 끊임없이 탐구해야 할 어떤 것이다. 그것이 지역성과 공간성을 살리는 방향이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고. 또 저자와 사진작가의 관계는 인간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더라. 강한 동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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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선영 사진 김형호, 이 책을 만든 작자들에 대해서!


글을 쓰신 고선영 씨는 '주부 한량'이시란다. 그냥 한량은 아니고 여행 잡지 기자 경력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계시는 듯. 자신을 당당히 한량이라 말할 수 있는 저 여유, 갖고 싶지 않은가. 사진은 김형호 씨. 유수의 일간지 및 여행 잡지에서 사진을 찍으셨다고 한다.


1. 기자다

기자는 내가 현재 시점에서 꽤나 호감가는 직업으로 꼽고 있다. 또한 관련 특강을 듣고 있지 않은가. 학보사에서 학생기자로 일한 것 또한 저자가 기자라는 사실에 흥미를 갖는 이유가 됐다.

기자 답게 이 책은 짧고 흡인력있는 문장이 엿보인다. 단 한 자의 오타도 없는 무결점 글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단순히 기사적 문체인가 하면, 또 그건 아니올시다. 여행이라는 것의 특성 상 감성적인 표현과 아름다운 우리말은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있다. 훑는 여행이 아닌,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내는 취재력 또한 인상적이고. 곳곳에 보이는 인물사진에 언뜻 전형적인 인터뷰 사진 포즈가 있어 반가웠다.

2. 부부다

여러 제약에서 자유로운 부부가 저자라니. 글은 아내가, 사진은 남편이. 오손도손 이들의 금슬이 얼마나 보기 좋은가! 또 개인적인 경험이 주효했는데, 학보사에서 사진 기자였던 남자친구 때문이리라. 우리도 지방 취재를 함께 가면 얼마나 좋을까 얘기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알콩달콩 얼마나 즐거웠을까! 남편을 '김 선생'이라 칭하는 이 제3자적 태도는 오히려 더 부러움을 자아내더라. 

솔로들이여, 걱정마시라. 이들의 닭살 행각은 책 어디에도 없다. 기자의 글답게 객관성을 담보했기 때문일까? 그래도 나라는 독자의 상상력은 부부의 여행을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단다.


그녀가 선택한 소도시들은 어떤 곳들일까.


그녀가 다루는 도시들(소도시)는 관광특구, 대도시가 아니다. 산업의 침체와 함께 쇠락한 도시도 있다. 인간 내음이 서려있는, 잘 나가지 않아서 외려 친근한 도시들이다. 

또 여행 코스 또한 거창한 기획이나 산해진미, 으리으리한 호텔을 권하지 않는다. 주머니 사정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라고 따라할 수 있다. 재밌게 본 영화의 흔적을 따라가는 영월 여행이랄지.

요 책에 담긴 마을들, 빨리 찾아가서 맛보려 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여유갖고 쉬엄쉬엄 찾아가도 된다. 언제까지나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날 반겨줄 것을 믿으니.


<소도시 여행의 로망>, 내용적 측면은 어떨까?

1. 맛깔스런 우리말 표현들

어쩜 이리 맛깔스레 표현할까? 상다리가 부렂리 것 같진 않아도 살뜰하게 차려놓은 여행기에 군침이 돈다. 나도 학보사 문화부 기자였기에 참신하면서도 재기발랄한, 그러면서도 핵심을 잃지 않는 표현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독서를 하면서도 그런 표현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나에게 이 책은 많은 밑줄을 그리도록 했다. 귀엽고 순박한 우리말 표현들을 얻은 것은 큰 수확이다. 귀여운 의성어, 의태어가 정말 쓸만 하다. 푸근한 사투리들을 군데군데 그대로 사용한 것도 좋았다. 있는 그대로의 그들, 화려한 수식도, 인위적인 꾸밈도 없다.

'여행자의 수첩'이라는,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담은 부분에서도 단어들이 유독 눈에 뜨인다. 가기, 먹기, 머물기, 해보기. 명칭부터 인간 지향적이지 않은가. 명사로 끝내는 야멸참이 아니라, 동사를 통해 인간이라는 주체를 살리고 진행성을 부여하고 있다.

알찬 표현 여기다 몇 개 소개해볼까?

"제법 앙팡지게 짹짹거리며 머리를 냈다 넣었다 움직여대는 모습이 퍽 귀엽다"

"수백 개의 놋그릇이 동시에 타드랑대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1월의 제주는 바람이 주인 행세를 한다. 이 때는 바람을 눈으로도 볼 수 있다. … 아마도 눈을 크게 뜨고 본다면 바람과 눈이 마주칠지도 모른다."

"옆 자리를 힐끔 봤는데, 김 선생이 도로롱 코를 골고 있다."

"어차피 세상 모든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어느 봄날의 일요일 낮이었으니까."


2. 금강산도 인후경?-좋은 경치보다 사람에게 관심.

여행기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결국,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집착하게 됐다. 풍경 속 그네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고 말을 걸고 싶어져 안달이 났다.… 그저, 어딘가 누군가의 지나간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빈티지한 시간들 말이다"

나랑 조금 다르면서도 신기하게 같은, 사람 사는 여러 모습들을 보기 위해 떠나는 게 여행 아니던가. 아니, 실은 굳이 떠나지 않아도 종로 구석만 누벼도 보이는 것들이다. 조금 멀리 나가면 조금 더 신이한 풍광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손 붙잡고 묻지 않아도 삶의 이야기를 읽어낸다. 여느 여행기보다 주민들의 목소리가 많이 담긴 것도 특징이다. 인터뷰, 취재를 통해 자의적인 해석보다는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여행기가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겠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과, 자연이 빚어낸 이야기다. 자연이 베푸는 넉넉함에 여유로운 사람들.

3. 지역성 극대화(각종 민담, 이야기, 내력)

"병산에는 달이 두 번 뜨지요. 서쪽에서 뜬 달은 병산의 동쪽 자락을 따라 이동하는데, 중간 즈음의 높은 산봉우리에 잠시 가려졌다 다시 뜨거든요. 달이 잠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니, 두 번 뜨는거랑 매한가지지요."

우리나라는 땅덩이가 좁아도 다채로운 지역성이 존재한다. 요즘 행정가들은 그런건 깡그리 무시하고 천편일률적인 지역 정책을 일삼는다. 그저 다른 지역에서 인기를 얻었던 축제라면 따라하기 바쁘고, 지역만의 내력과 특성을 무시한 채 일방적 정책을 추구한다. 이건 파괴에 다름아니다! 요 책은 그런 지역성의 회복을 꾀하고 있다.

4, 깨알같은 정보가 알찬, 여행자의 수첩

끝없이 감성으로만 가득찰 것 같은 이 여행서도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여행자의 수첩이다. 실용적 정보들이 담겨 있는데, '가기, 먹기, 머물기, 해보기' 등의 인간적인 명칭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은 앞서 말했다. 도시에 따라서 이 사총사 중 몇 개가 빠져있기도 한다. 그럼 '해보기'가 없는 도시는 해볼 게 없다는거야? 그런건 아니겠지. 요란한 정보는 아니고 깨알같이 유용하고 고소한 정보들이 적혀 있다. 

'가기'는 자가용 사용자들에 맞춰져 있어 나처럼 BMW(버스, 지하철, 걷기)밖에 이용할 길 없는 사람들에겐 슬프다. 고속도로가 막 나열돼 있는데 도통 뭔 소린지. 억지로 읽었다. '먹기'는 '하루에 네 끼식 먹어도 일주일 여행이 부족할 판'인 먹거리들이 있다. 주로 저자가 갔다온 데를 추천하는 듯? 물론 그네들의 정보력은 알아줘야한다. '머물기'는 깨끗하고 으리으리한 호텔을 소개해주기보다는 지역성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한다. '해보기'에서 추천하는 일들만 해도 소도시 정취를 느끼는 데는 성공! 아,'알아두기' 란에서 전화번호, 홈페이지 주소 등이 소개돼있다.

5. 풍부한 취재력

더 말할 것도 없이 계속 반복되고 있지? 한국 커피의 전설로 통하는 박이추 선생 인터뷰 등 그녀가 만나는 이들은 범인(평범한 사람)과 범인(범상치 않은 사람)의 경계를 오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터뷰나 취재가 거부감없이 일상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책 보기에 어떻더라-이미지와 편집에 대해서


1. 사람 냄새 나는 사진들

아기자기한 사진들이 보는 재미를 더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 냄새 나는 사진들. 물론 두 페이지 씩을 차지한 시원시원한 큰 사진들도 각 도시의 모습을 담기 위해 필수적으로 담겨 있다. 그렇지만 지면의 한계상 사진 수록 크기가 작은 사진들이 대부분인데, 내가 다 아까울 정도로 수려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진들이다. 

생각해보면 볕 잘드는 여행지들이니, 모든 사진이 평범해뵈도 그렇게 정겨울 수 없는 것 같다. 이것이 소담스런 우리네 이웃들의 삶의 모습.

2. 빈티지한 글씨체와 사진 편집

사진편집과 적절한 글씨체로 할머니의 다락방에 놀러온 듯한 기분. 시간여행에 풍덩 빠져보시렵니까? 여하간 질 좋은 종이와, 사진 많이 쓴 책에서 나는 이 향이 더없이 좋다.


추천-이런 이들에게 좋아요

1. 시끌벅적하고 상업적인 관광지에 질렸다면

2. 놀멍 쉬멍 걸으멍, 천천히 여행하고 싶은 슬로우족

3. 고향이 없는 당신에게 마음에 드는 고향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서울이 복잡하고 시끄러우며 지루한' 당신께. 진짜 고향을 찾고 싶은 당신이 마음에 쏙 드는 도시를 골라잡아!

4. 애환이 서린 한국의 근대문화유산을 찾아서


주의할 점

1. 책에 담긴 세상은 실제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녀가 비추는 세상은 너무나도 살기 좋아서 인생의 고통이나 현실적 고난을 도피하게 만드는 듯도 하다. 알잖나, 지방은 진통을 겪고 있다. 물론 '재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헐리'는 경주 황오동의 기와집과 점집들 등 문제들이 언급된 도시들도 있으니 대부분 그저 낭만적으로 그려진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들에겐 현실이 그리 낭만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2. 오타 하나 없으나, 뜬금없는 외국어 사용
뷰가 좋다느니... 갑작스럽고 필요없어뵈는 외국어 사용이 군데군데 있었다. 환상이 깨는 느낌이라 아쉬웠다.

3.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를 얻고 싶은 당신은 빠져!
'가기, 먹기, 머물기, 해보기'가 알려주는 정보들은 물론 깨알같긴 하지만 자세하거나 양적으로 많지는 않다.

글을 맺으며-느려도, 괜찮아.

청년층 사이에서 분 내일로 티켓 열풍. 그러나 나는 이 흐름에 동참하지 못했다. 사실 두려웠나보다. 관광지 순례하듯 명승지만 도는 주위 친구들을 보며 그렇게 정보를 수집하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게으름과 낙천성은 유명하다. 하지만 그녀의 여행기를 읽다보니 자신감이 생긴다. 미친듯이 꼼꼼한 정보는 필요없다. 그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만 있으면 되니까.






Posted by 카프카에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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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0.11.25 11:33 [ ADDR : EDIT/ DEL : REPLY ]
    • 히야, 이렇게 편집자분이 직접 댓글도 달아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외래어(?)외국어(?) 사용은 맛깔나는 우리말 표현들에 비하면 아주 적은 편이어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답니다. 개인적으로 읽는 내내 기분 좋았던 책이에요. 친구에게도 읽힐거고요.
      감각적인 편집 감사합니다^^

      2010.11.25 13:3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