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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정치!/독서

은밀한 갤러리 :: 현대미술과 경제논리의 필연적인 담합






은밀한 갤러리
국내도서>예술/대중문화
저자 : 도널드 톰슨(Donald Tompson) / 김민주,송희령역
출판 : 리더스북 201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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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은 물론 매체, 즉 기술의 발달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소통의 근본적인 동력은 사람에게 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기술의 발달보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더 우위에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때그때의 감흥을 그림으로 기록할 수 있다면, 선 하나하나에도 주관을 담뿍 담아낼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사실 그림 그리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교육의 시작부터 우리는 그리기와 만났지만, 잘 깎아 놓은 사과처럼 박제된, 그러나 멋진 그림에만 손가락을 추켜세우는 미술 교육에 풀이 죽었는지 모른다.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으며,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잘 그린 그림’의 강박을 깨자. 더군다나 그림 그리기는 ‘그린 그림’의 결과가 중요치 않다. 그림을 그리며 고삐 풀린 당신의 상상력을 즐겁게 받아들여라. 사물을 보는 내 의식 심연의 태도나 상처도 얼싸안자. 미술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미술이라는 높아 보이는 벽을 넘보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미술 전시회에는 관심이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렇게 그림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진 것은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작년 여름쯤 됐나. 전시회에 가고, 작가를 알아보는 등 수동적인 미술 향유를 보였다면, 작년 여름에는 내가 주체가 되어 실행했다. 미술이 거대담론이라는 생각과 그렇게 만드는 풍토를 거부하고, 나부터 실천을 해 본 것이다. 이름 모를 평범한 이들의 솔직한 감흥을 담아낸 그림 하나하나를 통해 일상에 깃든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것에 힘을 실어주고 이를 관찰하는 것을 제 인생의 목표로 잡았으니, 내 상황을 그대로 담았을 그림 그리기와 함께라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일 것도 같았다.


그래서 작년 여름엔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아주 멋진 선생님한테 그림그리기 강의도 듣고, 그림으로 표출되는 내면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또 2010 아시아프에서 도슨트 자원봉사를 하면서 젊은 작가들의 혈기와 이에 마음이 움직이는 관객들을 잇는 다리가 되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지난 학기에는 학교에서 미술사 스터디에도 참여해 공부했다.


나는 사실 현대미술에 큰 관심이 있다. 미술사를 공부하면 로꼬꼬니 바로끄니 아주 옛날 시대 얘기를 하는 게 다반사였다. 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르느와르 전시를 가 본 적이 있는데, 내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ㅠ_ㅠ. 차라리 르느와르 대형 전시 한 켠에 작게 진행된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지독한 작품들이 내게 신선한 느낌을 줬다. 이렇게 내가 현대미술에 유달리 눈을 반짝이는 건 미술은 동시대를 말하는 세련된, 또는 우회적인, 그리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술사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로꼬꼬 바로끄보다 내가 더 많이 배운건 예비 작가들의 세계이다. 미술학과에서 조직된거라 미술학도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거의 주도적으로 대화의 맥을 형성하기 때문에 이 친구(또는 선배)들의 사고 방식을 엿볼 기회가 많다. 대학에서 전공을 무엇으로 하느냐가 사람을 구별짓기에 그다지 좋은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된 나로서 뭐 미술학도라고 보통 젊은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있냐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돈에 에워싸인 미술시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전업작가로 성공하지 못할거야. 왜냐면 써포트가 없잖아. 이게 말로만 도는 게 아니라 실제 작가들이 느끼는 거구나, 알게 되자 도대체 현대미술시장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작품의 질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작품이 팔린다고 단언하기에 미술의 세계는 너무나 시각차가 명확하다. 그래서 현대미술과 그 숨은 얘기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를 하면서도, 그리고 임근준 씨의 책으로도 재미있게 알아봤었다. 은밀한 갤러리는 현대미술의 야사에 대해서 좀 더 꼼꼼히 파고든다. 아무래도 작가가 미술 시장의 중심에서 활발히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보니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보다 좀 더 다분히 경제논리가 감입된 외국의 한복판이니까. 미술에 관심을 지닌 경제학자라는 위치는 그 분석을 좀 더 설득력있게 한다. 미술을 논의하는 데 경제를 빼놓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이다.


그러나 읽다 보면 깊은 사유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투자 안내서 같기도 하고. 사실 경제학자이고, 미술시장을 분석했다고 해서 좀 더 새로운 시선을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미술시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며, 거품을 걷어내고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담론을 재생산하는데 기여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 조금 더 자세하고 본인이 직접 발로 뛴 실증적인 취재가 뒷받침되었을 뿐이지, 미술시장의 거품에 대한 통찰이나 판을 뒤엎을 생각은 없어보인다. 역설적으로 이 책이 좀 더 흥미있는 야사가 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술시장에 관심있는 투자자가 읽기에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