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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축제, 시장

대학로 속 작은 필리핀, 동성고 앞 일요일 필리핀 시장


흔쾌히 촬영을 도와주겠다고 승낙한 고마운 정 배우와 함께, 촬영 약속 시간에 맞춰 대학로에 왔다.
다들 조금 늦고, 카메라를 가지고 오기로 한 후배 짝이가 잠깐 있으라길래 '돈이나 뽑자' 하고
대학로 우리은행이나 갔다. 그런데 문득 동성고 앞에 보이는 시끌벅적한 풍경.
아, 저기에 필리핀 시장이 있다던데! 자영이에게 대학로 구경도 시켜줄 겸, 나도 한 번도 못가봤으니까 쩡자 손 이끌고 막무가내로 끌고갔다.


아이고 사람 많더만.
동성고등학교 앞에만 많은 게 아니라 횡단보호 건너편에도 필리핀 사람도 많았고,
그걸 구경나온 한국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시끌벅적하고 사람냄새나면서 삶의 기운이 생동하는 장터에만 오면 덩달아 활기차진다.

대학로를 2년 넘게 내 앞마당으로 삼으면서 한 번도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요일은 백이면 백, 정신없는 날이였다.
토요일 조판을 끝내고 운좋게 밤에 집에 들어가면 낮잠을 펑펑 자다 대학로는 밤에나 약속 있으면 나왔고,
그것도 아니면 조판이 일요일 새벽에 끝나버리면 첫차 타고 아침 7시에 귀가하여 또 잠이나 정신없이 자고.
뭐 생각해보면 일요일 아침이라는 시간은 두뇌 활동이 활발할 리가 없는 시간이구나.
그래서 예전에 버스에서 지나치면서 봤을 때, 그냥 재래시장인 줄 알았다.
종로구민들이 좌판 벌여놓고 야채나 파는구나 싶었지.
그래서 음주가무의 중심(??)은 너무한 표현이고 도심 중심에서 저런 시장이 공존한다는 걸 보고 역시 종로는 참 멋진 곳! 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후배가 언제 여기를 언급하는데 필리핀 시장이라길래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쪽 인도를 좀 보수공사하면서 임영박씨가 그렇게 좋아하는 꾸정물로 도시를 꾸며놔서 시장도 밀어버렸겠거니 생각했는데 아직도 생동하는 시장의 기운. 대단해요.
반면 임영박 씨가 그렇게 좋아하고 오세요 씨가 피쳐링한 거리의 물들은 시민들이 빠지기 일쑤요, 겨울엔 얼어서 말썽 여름엔 물이 더러워져서 말썽이라 지금은 다 덮어놨다. 뭐하자는거야?


이야! 만물상이 따로없네.
외국이라고는 태국밖에 다녀오지 않은 나에게는 상당히 낯선 물품들이 많다.
하나쯤은 내게도 소용이 닿는 것일텐데.
요놈들을 스쳐지나가면서 필요하구나! 인식하기에는 내 영어 실력은 미천하다.
상인들은 원래 자신의 상품들이 사진찍히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것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조심스레 찍었지만 우리의 훈훈한 필리핀 사람들은 개의치않는 듯 했다.
Can I take a photo? 라는 말만 해줘도 참 괜찮은 광경일텐데 용기도 없고 영어도 못한다. 이거 어째스까나.


우와 이런건 어떻게 공수해오는건지?
살아있는 물고기들이 펄떡펄떡.
살아있지 않아도 얼린 상태의 낯선 물고기들이 많았다.
필리핀 인들은 물고기 좋아하나보다.
나도 물고기 좋아한다!
루시드폴의 고등어를 좋아하게 된 이후로 고등어의 따뜻한 맛을 즐긴다.
엄마한테 이 노래를 들려주면서 고등어를 사셔서 구워좀 주십사 압박했더니
노래에 감동하여 곧잘 해주신다. 이런 조화로울데가!


우옹, 약식같은 것도 있고 정말 나는 도무지 모르겠는 맛있어뵈는 음식들이 많다.
시간도 얼마 없고, 용기도 없는 나를 용서해.


그냥 구경에서 끝내려고 했던 내 생각을 돌려놓은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요놈들
마치 치즈케익처럼 생긴 요놈들이 입맛을 확 잡아끌었다.
밥 먹고 나간 길이었지만 길거리음식들을 보니 뭐 하나는 사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뭉클.
돈도 뽑았겠다, 쩡자 고생할텐데 뭐라도 하나 나눠 맥여야지 했는데 이자식! 너무 맛있어뵈잖아!
계속 관심을 가지고 갔던 길 되돌아왔다가 유심히 보고 사진찍고 이러고 있으려니까
필리핀 아주머니께서 왼쪽건 코코넛, 옆에껀 계란 파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가격도 착해서 1500원. 코코넛이라면 맛있을테니까 하나만 주세영!
끼양끼양 나도 드디어 사먹었다!



시식하는 쩡자.
약간 거부감느끼더니 맛있게 잘만먹넹.
바나나튀김도 먹고 싶었고 여러가지 먹고 싶었지만 요걸로 만족,


삼겹으로 이뤄져있고,
겉은 뭔지 모르겠고 가운데 두꺼운 층은 코코넛인듯 말랑 몰캉하고,
맨 아래는 밀 전병스럽다.
달짝지근하고 포근한게 맛있었다.
이대로라면 조금 더 사먹어봐도 괜찮겠다.
 
7D망고가 마트에서 4900원 쯤 했던 것으로 아는데, 여기선 3개에 만원이란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은 것 같은데, 다음엔 제대로 와서 먹고 즐겨야징!!

요기 혜화동 천주교 성당에 필리핀 사람들이 모여든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처럼 발전했다는 필리핀 시장.
위에서부터 아래로,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한 그들만의 삐까뻔쩍 서울을 만들려는 시정방침과는 참 친하기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불안하지만, 오래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필리핀에서 중학교 1학년때부터 대학교 들어오기 전까지 살다 온 유디니랑,
지금 어학연수 때문에 필리핀 세부로 6개월간 가버린 뚜이니랑 같이 가서
이것저것 배울 수 있겠지.
그들이 추천하는 거리음식을 주저않고 시식하는 대범함! 누리고 싶다. 어서.

*아참, 주유소 쪽에도 필리핀 식당이 있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