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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정치!/음반

순이네담벼락 2집 - 한 개의 달, 한 개의 마음




* 순이네 담벼락
정규앨범 2집 '한 개의 달, 한 개의 마음'
쓸쓸한 겨울 나그네들을 위해 - 흔한 사랑 노래





이제야 언어로 표명할 수 있어진 사실이 있다. 난 겨울에 약하다. 사상체질이 음인에 속하는데다 찬 성질의 음식을 좋아해 몸이 많이 차다. 문자 그대로 설상가상으로 집에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해서 외풍이 무지 심하다. 여름에도 꼭 이불 끌어안고 자는 난데 겨울엔 이불 몇 채로 몸을 뭉게도 추위엔 속수무책이다. 낮은 온도와 바람에 빼앗긴 체온, 허하니까 자꾸 뭔가를 먹는다. 지방이라도 축적해서 추위를 피해볼 요령인거냐, 몸아? 심히 우려되는 현상이지만 그렇게라도 체온 유지하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몸이 애처롭기도 하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따뜻한 물 마시고, 방한용품 챙기고, 두껍게 입으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별 수 있나.



제기랄, 몸만 겨울 타면 그나마 괜찮겠는데 왜 마음도 겨울을 탑니까? 이건 나 어찌할 수 없잖아요. 마음에 장갑을 낄 수도 없고 목도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너는 왜 형체가 없어서 사람을 고생하게 하니? 몸보다 나을 건 하나도 없으면서. (나는 정신이 몸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순이네담벼락은 그런 겨울에 찾아왔다. 수공예 돋는 저 인사 글귀 좀 보소! 말로만 들어왔던 인디 밴드들의 수공예 음반은 처음 받아봤다. 후배가 달빛역전만루홈런 팬인데 예전에 그 분 생전에 CD를 저런 식으로 따뜻하게 보내주셨다고 자랑했었지. 음반에 담배 냄새가 베어있다나 뭐라나. 나도 10cm 좋아할 때 그네들이 싸이클럽에서 판매하는 음반을 그런 루트로 살 수 있었으나 왜 안 샀었더라. 아무튼, 이제 지상파 스타가 되어버린 그들, 그런 방식으로 CD를 판매하는 여유는 사라졌겠지? 겨울이라 그런가, '감사합니다. 잘 들어주세용 -순이네'라는 짧은 글귀가, 그러나 사람의 작용이 분명한 저 글씨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뭐 나도 그랬지만(과거형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쩍 주위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고생한다. 내 나이가 이제 사회에 편입될 중간 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일까? 고민도 많고, 갈등도 하고, 자기에 대한 성찰도 많이 하고. 많이 울고. 이렇게 복잡한 인생 어른들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새삼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만나는 수많은 이들, 모두 나와 같은 고민을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겪겠지? 나만 특별한 줄 알았던 생각에서 벗어나 인간 공동의 숙제를 발견해서 뭐 반갑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체 모를 애정도 생겨나고. 이렇게 성인이 되어 가는건가.


사실 내가 아픔을 극복하는 방식은 이런 식으로 기존의 생각을 뒤엎어 새로운 깨달음을 얻거나, 망각에 의존하고 있다. 노래 가사가 귀에 들어오는 나이,라고들 어른을 정의한다. 물론 나는 꼬꼬마 시절부터 가사를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봤기 때문에 예외인가 싶기도 하지만 가사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점에서 저 말 맞다. 한동안 아픔에 절어있을 때 이별 노래가 들려오기라도 하면 이입하기에 바빴었다. 그래서 노래 듣는 걸 피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언니네이발관의 '순간을 믿어요' 류의 노래는 내 아픔 극복 방식에 부합하기도 했다. '이 순간들을 다시 헤아려보니 그래도 내게 기쁨이 더 많았어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 기억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 그래서 이별의 아픔에 울부짖는 노래이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노래이든, 초월과 해탈의 경지에 이른 성인들의 노래이든 그냥 흔한 사랑 얘기 한다고 생각하고 듣게 됐다. 와 많이 컸다.







순이네담벼락이 위치한 지점은... 글쎄 찌질함 아닐까? 사랑 앞에서 누구나 찌질해진다. 쿨함은 '척'일 뿐이다. 쿨한 척,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발악! 남들에게 미처 얘기하지 못한 내 이야기의 끝자락, 찌꺼기. 그저 그녀의 집 담벼락에 끄적일 수 밖에 없었던 진짜 내 감정. 순이네담벼락의 노래엔 그런 분위기가 흐른다. 왜 그런 적 있잖아. 이미 권장 취침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새벽, 지금 자야 되는 건 아는데 이대로 잠들기는 너무 외로운 그런 새벽. 괜히 센치해져서는 옛날 일도 생각나고, 그동안 흩어져버린 인연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감상에 취한 새벽. 그럴 때 쓴 싸이 다이어리같은? 한 마디 한 마디 내 감정을 뚝뚝 담아 저절로 써내려간 글. 과장 없이 감정이 취한 글인데 다음 날 아침에 보면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잠 자기 전에 다시 떠올리면 하이킥을 날리며 후회할만한 그런 류의...






근데 나 그래서 순이네담벼락이 좋다. 세련되게 가공된 보석의 느낌은 아니고, 원석의 느낌이랄까? 사실 가사의 문장은 산만하고 잉여적인 부분도 많다. 진짜 우리가 일기에 쓰듯!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나 느낌을 담아 보편적이다. (내가 아는 가수를 동원하여 설명하면)토마스쿡과 몽니의 중간 정도, 세련된 목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호소력있는 목소리도 아니지만 정이 가는 보컬!? 그리고 섬세하지는 않은 듯 툭 던지는 연주와 분위기. 이것저것 쌓여 있는 다락방 같은 느낌이다. 꾸밈없이 포근한. 내게 작년 겨울은 음악만 들으면서 잉여롭게 보낸 계절이었는데 그 때 생각이 너무 많이 난다.






그리고 순이네담벼락을 들으며 크리스마스를 생각한다. 내가 이번 해에 보낼 크리스마스는 화려한 것이 아니기에(화려하게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여기저기 데이고 찢겨 아픈 청춘들 여럿 모여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지금 이 어중간한 상태에 대해 공감하고. 그렇게 애매모호한 청춘을 참고 견디는 법을 배우는. 흔히 말하는 성공을 위해서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는 얘기나 하고, 몸매를 망치는 술이랑 안주 같은 걸 밤새도록 먹겠지만 생각만 해도 가슴 한 켠이 뜨끈해지는. 무척이나 기대되는 크리스마스를 말이다! 캐롤 대신 순이네담벼락의 찌질한 노래 들으며 내 친구들에게도 넌지시 위로 건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