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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정치!/음반

음반) 판타스틱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의 '오아시스' 리뷰




  그런 사람이 있다. 첫인상은 그저 그랬다. 성격이 딱히 모난 것도 아니고 나에게 피해를 줄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러니까 별 이유도 없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말이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얘기를 해보면 할수록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 사람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뭐라고 정의하면 될까. 참을성 없이 단번에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상대방과 본인과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나'를 전해주는 그런 사람?

 '판타스틱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의 음반 '오아시스'는 내게 그런 사람처럼 다가왔다.







 정민아의 이름과 어감이 좋아 혼자 되뇌어 보는 '가야그머'라는 명칭을 처음 본 것은 홍대에 있는 라이브카페 벨로주(VELOSO)에서였다. 네이버에 자주 가는 공연 리뷰 블로그가 있는데,(http://esthero.co.kr/, 전문공연사진가 못지않은 멋진 사진이 으뜸) 벨로주에서 찍은 사진들이 그렇게 분위기가 좋은거다. 마침 친구가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와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콘(KoN)의 공연을 예매해서 함께 보러가게 됐다. 그 공연에 참가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 생각에 새로움은 두 가지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하나는 익숙한 공간 속 새로움. 또 다른 하나는 아예 공간을 이동해 버리는 것이다. 전자는 모두가 알고 향유하기까지 하는 공간에서 독보적인 방식이나 사고로 새로움을 창출하는 것이다. 후자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차원으로 이동함으로써 새로움을 던지는 방식이다. 고상지와 콘의 공연은 아르헨티나 '땅고'라는, 지금까지 주로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음악적 차원으로 이동시켜줬다. 공연이 끝나고 그날의 감흥과 충격에 혼미해있을 무렵, 벨로주 계단에서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 공연 포스터를 본 것이다. 새로움에 젖은 그날 내 눈에 뭔들 새로이 보이지 않았겠느냐만, 아르헨티나라는 이국의 음악과는 또 다른 새로움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니까 정민아는 새로움의 경험 방식 중 전자일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했다. 가야그머이긴 가야그머이되 '모던'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니까. 그런데 그 포스터가 붙은 게 국립국악원 예악당이 아니라 홍대 라이브카페라는 게 다소 의아하긴 했어도. 그때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국악과는 판이하게 다른 정민아의 음악을.

 


 
 거짓말처럼 위드블로그에 정민아의 음반이 떴다. 곧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그런 이유때문에 신청을 안할쏘냐? 덕분에 지금 어지러운 와중에 작성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흘러나오는 정민아의 음악은 내 남은 편견을 씻겨내려가게 해 줬으니 이 정도의 헌사야 응당 바쳐야지.

 


정민아 3집 - 오아시스
음반>국악
아티스트 : 정민아
출시 : 2011.05.26
상세보기


낮엔 전화안내원, 밤엔 홍대 인디 가야그머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데뷔앨범<상사몽>을 만장 이상 판매한 정민아의 스튜디오 세번째 정규 앨범!


정민아는 가야금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가야금 싱어송라이터이다.
홍대 인근의 인디 라이브클럽을 중심으로 2004년 부터 공연해왔고, 2007년 발매된 정규 1집 [상사몽]을 근간으로 각종 미디어에 소개 되었으며, 그녀의 앨범 [상사몽]은 1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삶을 관통하는 가사와 서정적인 곡으로 대중의 마음을 울린 그녀는 2010년 정규 2집 [잔상]을 발표하며 베이스와 가야금의 새로운 만남을 선보였고, 2008년, 2011년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처연한 목소리와 가사, 삶의 밝음과 어두움을 공존하는 그녀의 곡과 연주는 인간 본연의 심정을 건드려 어떠한 장르에 편향된 것이 아닌, 그녀 자체의 음악으로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번 앨범에서는 2집 '잔상'에서 함께 작업했던 베이시스트 서영도와 더불어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의 드러머 한웅원, 뛰어난 감각으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박진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자 음악극집단 '바람곶'의 리더인 원일, '두번째 달'의 멤버 박혜리, 국립국악원 해금 단원 공경진까지 내노라 하는 세션이 참여하였다. 특히 이번 앨범에서 새롭게 시도한 DJ UNIQUE-SHADOW와의 일렉트로닉 사운드 또한 앞으로 정민아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 위드블로그 음반 설명 중








 # 당신이 상상하는 국악이랑은 딴판일걸!

아무리 '모던 가야그머'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왔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느 일요일, 정례적인 우리 집 청소날 엄마가 "얘야 너 어제 갖고 온 음반 좀 틀어봐라"라고 명령하셨다. 즉각 이행하고 청소기를 잡은 나는 오디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왜 저기서 '옥상달빛'류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지? CD를 잘못 끼웠나? 가사는 '몽롱몽롱몽롱몽롱 맥주가 너무너무너무너무땡겨' 이런 식....... 사실 싱어송라이터인지도 몰라서 노랫말이 나오길래 놀라기도 했다.
처음 들었을 땐 거부감이 앞섰다. 전통을 계승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파격은 용인되며 오히려 장려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정민아의 모던 국악은 국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야금 소리가 부각되지 않는 느낌이었고, 그저 세션 중 하나로 자리해있는 것 같았다. 국악이라기보다는 홍대 인디 음악의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앞서 '만나보면 만나 볼수록 매력이 있는 사람'의 얘기로 서두를 채웠듯이 정민아의 음악을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참맛을 느끼게 됐다. 가야금이 밴드 음악과 전혀 이질감이 없는 것이었다. 조곤조곤 속삭이는 보컬도 '고음지향적인' 무대에 질린 내게 소화하기 쉽게 다가왔다. 또 다소 유치하다고 느꼈던 가사도 청춘의 풋내가 나 좋아졌다.

 # 노랫말 속 담긴 청춘의 짠내

'몽롱 몽롱 몽롱한 음악 몽롱몽롱몽롱몽롱몽롱몽롱몽롱몽롱(01. 여름날에 몽롱한)'

'망했네 망했네 망했네 이걸 어떡하지/망했네 망했네 망했네 벌써 젓가락만/망했네 망했네 망했네 이천개를 샀네(04. 주먹밥)'

정민아의 오아시스에 대해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나는 이 가사들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마구 날렸으나 정민아의 음악과 개인사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된 지금 그 화살을 조용히 뽑고 마데카솔을 발라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민아는 한때 알바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한양대 국악과 재학 시절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경마장 매표원, 학습지 방문교사, 목욕탕 청소, 홈쇼핑 전화상담원 등 생계형 알바를 전전했다고. 그런 경험이 녹아든 노래들이 '주먹밥', '은미 이야기' 등이다. 직접적으로 개인사가 드러난 곡 말고도 이 음반 전체가 청춘에 바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에 위로를 받았고 청춘의 감성이 짙게 깔려있기 때문에 공감도 할 수 있었다.

'살아가는 지금이 겨울, 겨울 같아도 사실 지금은 봄이라네'라고 말하는 '봄이다'의 가사를 보면 그 점을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다음에 정민아의 공연을 꼭 보고 싶다. 가야금의 존재감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그 전에 이거나 보러 가야지.


환타스틱 모던가야그머
감독 최승호 (2011 / 한국)
출연 정민아
상세보기

8월 1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