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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정치!/독서

그저 사랑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사랑하는 이에게 주고 싶은 책 -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창비, 2011


 모든게 짜증나고 축축하고 지루한 장마다. 과제를 아직 덜 끝냈고 기일을 넘겨 버렸다. 마지막 가서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알면서). 내게 별로 남지 않은 여름, 나가서 놀고 싶은데 비 온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7월 중순에 난 죽음에 다다를 예정이다. 죽기 전이라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는 것 같다.(농담 반 진담 반임)

 그 와중에 좋아하는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작년 한참 외로울 때 나를 달래 준 이야기이다. 사실 나는 단행본을 본 적도 없으나 이미 다 읽었는데, <창작과 비평>이라는 계간지를 구독하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에 4번에 걸쳐 연재되었고, 통권 151호(2011년 봄)에 연재가 끝났다. 학보사에 있었을 시절에 학술부에서 구독했지만 아무도 안 읽는 것이 바로 <창작과 비평>이었다. 나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나중에 꼭 정기구독자가 되어야지, 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것이 바로 창작과 비평 통권 151호


 두꺼운 책을 받아들고 의무적으로 읽기 시작했을 땐 문학 비평이 먼저 보였다. 뭔가 새로운 글쓰기인데. 사회과학 전공 서적에서 볼 수 없었던 자의성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얼마간의 확대 해석과 끼워 맞추기가 미덕인 듯. 창작자 못지않게 평론가 또한 상당히 창조적인 작업을 수행한단 걸 알았다. 원래 작품보다 더 어려운 글을 써 가면서.

 개중 연재소설이 바로 <두근두근 내 인생>이었다. 김애란이라는 작가는 유명하다. 문단의 국민 여동생인데 그러한 칭호는 한 때 문학 청년을 갈망했던 내게 질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이번 책에 추천사를 쓴 사람들은 황석영, 성석제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인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입에 올린 모든 여성은 질투의 대상이 되므로 (??) 김애란은 여전히 내 질투를 받는다.

 그런 삐딱한 시선에서 읽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재 소설은 내 읽기 경력에서 최고로 쳐 주겠다. 게다가 최근 문학을 별로 안 읽기 때문에 가뭄에 달디 단 비를 내려 주었다고도 하겠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지하철에서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도록 몰입하게 만든 책들 중 하나라고 하면 된다. 단행본 이전에 책이 나들이를 하는 통로로 이러한 문학 잡지가 중요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남들보다 먼저 접하고 단행본 출간을 기다리는 설렘도 받았고 말이다.

 책을 안 읽은 사람을 배려해 책 설명을 잠깐 하겠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 모든 이야기들은 사랑을 에둘러 말한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구질구질하고 애달픈 사랑인지 모른다. 하지만 17살 정신적으로 생기가 넘치는 청소년의 눈으로 그려져 아주 두근두근하다. 보는 내내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지난 학기에 들었던 과목 중에 '예절교육및실습'이라는 수업이 있다. 교수님은 관혼상제를 얘기하며 혼례 부분을 설명하고 계셨다. 그더다 이 단어를 꺼내셨다. '섹스'. 머지않아 불편스런 분위기와 마주하게 됐다. 어떻게 저런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실 수가 있는지, 그리고 수습을 빨리 하지 않으시는 교수님이 원망스러웠다. 경직된 분위기를 예상하셨던 교수님은 곧 이렇게 말하셨다. "여러분 이 말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두근하죠? 여러분 나이 때에는 다 그런 겁니다." 불편한 분위기에 심장이 옥죄는 분위기(시쳇말로 손 발이 오글오글한)도 두근두근한 것과 동격인진 모르겠지만 감동을 받았다. 교수님도 나도, 그리고 같은 반 모든 학우들도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는 유대감 때문에? 그 욕망이 숨기고 싶고 또 그래서 괴로운 것임에랴.

 딱 지금의 소년 아름이의 나이, 열일곱 때 만났던 소년의 부모는 그 두근두근함 때문에 소년을 낳았다.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낭만적인 방식으로 그들은 사랑했지만 후의 삶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둘은 시련에 좌절하기도 하고 남의 눈치도 봐 가는 평범한 부모의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어쩌면 일찍 늙어버리는 병을 앓는 소년 아름이도 그들에겐 아픔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이 특유의 애늙은이 감성과 필력으로 부모의 사랑은 다시 두근두근 뛴다. 스물세살 나까지 두근두근하다.

 사실 스물세살인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지. 그래서 더욱 공감이 컸던 것 같다. 예전에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라는 뮤지컬을 남친과 본 적이 있다. 김무열이 나오는 걸로 기대하고 간 건데, 예상치도 못하게 내 인생 최고의 공연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도 캐스팅을 바꿔서 계속 하는데, 그 때의 충격과 감동에 해가 될까 보고 싶어도 참는다. 그 뮤지컬은 사춘기의 반항 심리 뿐 아니라 소설과 비슷하게 성에 눈뜨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위태로운 그들의 모습은 결국 비극으로 끝났는데, 이 종결 방식은 적어도 김애란 소설에 나온 부부처럼 구질구질하진 않았다.

 현실과의 접점이 없는 <스프링 어웨이크닝>보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 더욱 두근두근한 이유다. 앞으로 누구와 결혼할 지, 어떤 아이를 낳을 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세상의 시선이나 조건 따위 안 보고, 그저 사랑만으로 이렇게 눈물나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소설이 마냥 반갑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읽히고 싶은 소설이다. 다른 거 다 됐고, 너만 있으면 되니까 당장 결혼하자고.




* 주의 : 이 책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사랑 유발제입니다. 주변의 청소년인 자녀나 동생에게 이 책을 선물할 시 결과에 책임을 못 집니다. 책임은 엄마와 아빠가 지어야죠.



* 창비 정기구독자 할인 혜택이 있습니다. 귀찮더라도 조금 싸게 구매하실 분은 제게 연락을.
* 최대한 개인 연애사는 자제를 했습니다. 그게 매우 힘들었지만 읽는 이의 구토증상을 억제하기 위해서. 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때 편지글로 각색하면서 연애사를 담뿍 집어넣어야지...
* 책에는 김애란 특유의 미친 듯이 고운 표현들이 많은데 읽은 지 오래 되어 써넣지 못했네요. 아직까지 남이있는 감흥을 담담하게 썼습니다.
* 이 책 말고 사랑하는 이에게 줘 봤던 책으로는. 우리 둘 만의 비밀 ~



내 사랑하는 이여, 근데 그 전에 전화 좀 걸어줘라. 아 외로워 ㅋㅋㅋ




두근두근 내 인생
국내도서>소설
저자 : 김애란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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