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식자는 물론 포식자까지, 생명 예찬 한국 애니 <마당을 나온 암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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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드라마, 어드벤처 | 전체 관람가 | 2011.07.28 개봉 | 93분
양계장을 탈출한 겁 없는 암탉과 철부지 청둥오리의 기막힌 만남!
매일 알만 낳던 운명의 암탉 잎싹은 양계장을 탈출해, 나그네와 달수의 도움으로 자유를 만끽한다. 어느날, 주인 없이 버려진 뽀얀
오리알을 발견한 잎싹은 난생 처음 알을 품게 되고... 드디어 알에서 깨어난 아기 오리 초록은 잎싹을 '엄마'로 여긴다. 족제비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늪으로 여정을 떠나는 암탉 잎싹과 청둥오리 초록. 과연 이들은 험난한 대자연 속에서 더 자유롭고 더 높이
날고 싶은 꿈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위드블로그 영화 정보 중
2011년 1학기 수업이 즐거웠던 이유. 원전공인 신방 말고 연계전공으로 콘텐츠 관련 학과 수업을 듣게 됐다. 평소에 취미로 즐기던 것을 학업으로 삼게 되니 그 즐거움을 어찌 말로 다 할쏘냐! 그저 재미있게 콘텐츠를 향유하고 문화를 즐기면 그것이 바로 공부이니 기쁨이 컸다. 더불어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을 알게 되었다는 점도 또 다른 기쁨이다. 전공의 특성 상 다양한 원전공자들이 모여들었지만, 특히나 영상학과 학우들을 많이 봤다. 그 중에 애니메이션을 전공한다던 한 학우 분과 같은 조가 되어 얘기를 많이 했다. 흔치 않은 기회라 이것저것 평소에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영화 전공자들은 박찬욱, 홍상수 이렇게 '롤모델'이 있잖아요. 애니 전공자들은 어떤 흐름을 지향해요? 독보적인 존재가 있나요?" 나의 물음에 그 학우는 이렇게 말해줬다. 미국 애니를 지향하는 부류도 있고, 일본 애니 쪽을 지향하는 학우들도 있다고. 애니메이션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설명을 듣고 단번에 이해가 됐다.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주제나 표현 기법 등에 있어서 극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내 머리속에 아로새겨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한국 애니가 선 자리는 어디냐는 것이다. 우리 콘텐츠 전공이 '글로컬'을 지향하고 있거든요. 한국적인 우리의 것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기획, 창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호소력을 갖는 것. 이것이 우리 전공의 목표인데 유독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이룩해 낸 것이 많지 않아 보였다. 나도 이렇게 고민할진대, 애니 전공자로서 그 학우분의 고민은 얼마나 컸으랴. 그래서 그 학우 분의 다크써클은 항상 볼까지 내려와있었던 것인가...
그렇게 한 학기는 갔고, 방학을 맞아 잉여력을 풀가동하고 있다. 어떤 영화를 봐도 흥미가 없고, 책도 몇 장 보다 털썩 덮곤 했다. 이건 장르 편식이 아니라 이야기와의 권태기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겪어야 하는 도입부나 정형화된 말하기 방식 등에 신물이 났다. 당당하게 어떤 글이든 읽고 쓰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라고 말하던 나는 어디로 간거지. 빠져버린 정신과 함께 길고 긴 여름휴가라도 떠났단 말이냐. 빈 껍데기만 남아 그렇게 외출해버린 문학 청년을 기다리던 나는 단순한 이야기의 힘을 가진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에 없었던 것 같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이력은 내가 누누히 말하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광복절 특사>가 최초로 극장에서 본 영화이며 그 이후 가뭄에 콩 나듯 친구들과의 사교를 위해 몇 편 보다 대학생이 되어 사교 및 유희 활동이 폭발하였기 때문에 이젠 남들 보는 정도로 보는 것 같다. 영상물과 친하지 않아 집에서 영화를 다운받는 일도 좀체 없다. 한 때 친한 척 하더니 요샌 데면데면하다.
그래서 위드블로그에서 당첨 소식을 받았을 때 꽤나 설렜는데 그 이유는 말이지. 일단 한국 애니라는 점.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이 어디까지 와 있나 가늠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예고편을 봤더니 색감이 파스텔톤으로 감성적인 색깔이 물씬 풍겼다. 일본의 세밀한 펜화 풍이나 미국의 선명한 색감과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스토리를 살짝 살펴보니 한국적인 감성이 베어 있어 기대되었다. 또 문소리, 유승호, 박철민 등 각 역할에 몰입을 도울 명배우들의 목소리 연기! 연기라는 것 자체가 본인이 아닌 것을 본인화시키는 거지만 내래이션을 한다는 것은 연기자들에게 또 다른 도전일테니 그 과정에 동참하게 되는 것 또한 두근대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 영화를 기대하며 '한국 애니'의 자취를 찾는 나같은 사람에게 마당을 나온 건 암탉 뿐 아니라 한국 애니였을 것이다. 마침내 한계를 뛰어넘고 가능성을 보여줄!
이번 영화는 종로를 자신의 '나와바리'라고 말하는 쏨과 함께 했다. 종로 베니건스 50% 행사 덕분에 든든하게 부른 배를 움켜쥐고 비오는 피카디리로. 비오는 거리를 걸어 영화관에 도착했을 때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영화관은 이미 어린아이들에게 점령되어 천국이 된 까닭이다.위드블로그 말고도 다양한 사이트에서 초대 행사를 진행한 듯 부모와 손잡고 영화 보러 온 아이들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부모 단위 영화 관객이 이렇게 많았구나 하는 새삼스런 놀라움과 함께...
우선 가장 표면적으로 기대했던 것이고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성우 연기이지! 다소 억척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이 느껴지는 문소리 언니의 잎싹 연기가 귀에 들어왔다. 다소 신파풍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배역에 몰입을 하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더불어 눈에 들어오는 전래동화와 같은 아름답고 정겨운 색감! 달밤의 전투나 숲 속의 미시생태계를 아기자기하게 다룬 그림체.
초반에는 스토리가 몰아쳐서 주입됐다. 처음 잎싹이 양계장을 탈출하려 했을 때의 전개는 다소 통속적인 면이 있어 영화를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읽게 했다. (+_+) 이건 다 박찬경 씨 영화보러 갔다가 우연히 만났던 그 네이버 영화블로거님의 영향인듯... '이 좋은 델 왜 나가? 먹여주지, 채워주지.' 계속 탈출을 시도하는 잎싹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주위 환경은 말한다. 잎싹은 '내 알을 꼭 품고 싶단 말야'라고 말하며 자유를 갈망하고. 잎싹이 눈감고 넘어갈 만한 우연의 남발로 탈출에 성공하게 됐을 때에도 잎싹은 회귀본능을 자제하고, 아니 자연으로의 회귀를 하려 의식한다.
영화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던 최민식 분의 나그네 목소리 연기! 객관적으로 보면 참 멋있는 목소리지만 다소 느끼함이 넘쳐 흘렀다. 개인적으로는 자연스럽고 괜찮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몸서리쳐주시는 바람에... 족제비에게 습격당한 나그네가 목숨을 잃게 됐을 때 잎싹이 떠안게 된 초록이의 목소리 연기 또한 내 친구의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아직 채 변성기 티를 벗지 못한 목소리가 깊은 연기를 불가능하게 한 것인가... ㅠ_ㅠ
이 영화가 서양 애니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결말을 뽑는 방법에 있다. 가장 경악스러웠던 사실은 영화의 잎싹의 희생 정신. 자연의 섭리에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연에 복종한다. "나를 먹어. 네 새끼를 굶지 않게 하려면" 초록이가 파수꾼이 되고 난 후 늙고 병든 몸으로 혼자 남게 되자 잎싹은 족제비에게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 주는 무서운 결단을 내려버린다. 지금까지의 스토리 전개와는 다소 맞지 않는 과감한 결단 때문에 영화관이 먹먹해지긴 했지만 모든 생명과 모성에 대한 찬사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피식자가 포식자를 뒤엎고 승리하는 장면들에서 저렇게 되면 해피엔딩이긴 하나 진정한 생태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