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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생활자

보령 기차 여행길 단상 : 명문당 사거리로 오기까지




명문당 사거리로 오기까지_
아직 일상의 그림자가 채 지워지지 않은 보령 여행의 서막



지난 학기 큰 일이 참 많았습니다. 어찌 보면 힘든 일들이었지만 나름대로 도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여 큰 성장을 했지요. 그러나 다소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책 『주홍글씨』를 읽다가 그때 제 상황을 설명할 좋은 글귀를 발견했는데요. "그녀는 까무러쳐서 힘에 겨운 고통을 회피하는 성미는 아니었으므로 그녀의 정신은 돌같이 딱딱한 무감각이란 껍질 밑에 피신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무감각, 무감정, 냉정 등의 성격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차분해졌냐" "예전엔 붕 뜬 느낌이었는데 이제 정상 범주로 내려온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걸까요? 남들은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일을 많이 겪어서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겠다'라고 느꼈던 저인데. (뭐 실제로 전 운이 매우 좋은 편입니다) 앞으로도 차고 넘칠 인생의 파도에 휩쓸리다보면 척박한 성격이 되어버리겠다는 위기감과 마주했죠.

그 때 제가 떠올린 건 '떠나야 하겠다'입니다. 낯선 곳에서 나와 마주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싶었던 것이죠. 아파서 내내 요양했던(!) 여름방학 끄트머리에 양구를 무박으로 혼자 다녀온 후 그 좋았던 기억을 그리워했습니다. 학기 중에는 학업에 매진하느라 실행하지 못했는데 방학이 되어서도 몇 가지 지리한 일상이 저를 놓아주지 않더군요. 계절학기도 처음 듣고, 학교에서 잠깐 편집 아르바이트도 하고. 모두 다 재미있고 많이 배운 경험들이지만,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지키지 못한 약속처럼 저를 내리누르는 것이었습니다. 계절학기와 알바 사이에 난 시간에 광주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친구가 거액을 분실하는 바람에 황망하게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떠나지 못한 제게 좋은 구실이 생겼습니다. 위드블로그의 '전통시장 살리기 캠페인'인데요. 학보사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주제이고, 실제로 여러 전통시장을 놀이터처럼 누비는 게 취미였던 저한테 딱 맞는 주제였죠! 그래서 제 활동반경 내에 있는 시장 캠페인에 신청을 하여 오랜만에 포스팅도 하고 그랬더랬죠. 사진기가 없어졌기 때문에 스마트폰(EVO) 카메라로 용 쓰면서요. 서울풍물시장 포스팅으로 재미를 붙인 저는 내친 김에 원거리도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한 번도 못 가본 부산을 가볼까? 아님 아빠가 계신 대전? 캠페인을 찬찬히 살펴보며 고민을 하던 저는 독특한 시장을 포착했습니다. 충남 보령 한내시장인데요. 검색을 해도 결과가 없었습니다. 제가 다녀온 의정부제일시장이나 서울풍물시장은 여러 분들이 나름의 개성을 살려 포스팅을 한 걸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요. 하나도 없었습니다. 웹문서에서 하나 발견한 게 고작이네요. 후에 '보령 전통시장, 대천 5일장' 등 검색어를 달리하여 결과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여하간 결과가 없는만큼 더욱 가치있는 포스팅을 할 수 있겠다 하는 도전의식이 발동하여 신청, 리뷰어로 선정되어 보령으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보령에 가니 4개의 시장이 시내에 함께 뭉쳐있었는데요. 다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겠다 싶어 충남 보령 중앙시장도 마지막날 신청했습니다 '-'


와 나 진짜 말 많다...... 여하간 그렇게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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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감기 기운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여행 일정을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새벽 2시 넘어 잠들고 느지막히 일어나기 일쑤였는데 5시 정도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나왔습니다. 용산역까지 넉넉하게 2시간 정도 잡아야 하거든요. 시장의 생리는 부지런하기 마련이니까 일찍 가지 않으면 다양한 모습을 놓칠 것 같아서요. 때는 2월 2일. 55년만의 추위. 북극 추위. 무서워서 꽁꽁 싸매고 갔습니다. 패딩에다가 코트 입고 털신발. 그래도 춥더군요! 집 앞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찍었습니다. 여행 초보라 그런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얏호! 추운 날이어도 지하철엔 아침 일찍부터 사람이 많았습니다. 인상 깊은 분은 당신 몸보다 큰 부럼, 나물 꾸러미를 싣고 가시는 할머니셨는데요. 아마도 도매시장에서 떼다가 팔러 가시는 길 같았습니다. 추워서 출근하기 싫다는 트위트들을 읽으며 묘한 대조를 느꼈습니다. 또 내 처지도 묘한 대조가 되었습니다. 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일에 산뜻한 마음으로 놀러 가는 내 처지라니!

용산역에 내리니 1호선이 어쩌구 죄송합니다 어쩌구 얘기가 많고 혼란스러워 보였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1호선이 고장나고 탈선하여 출근길에 대혼란을 빚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미안했습니다. 역시 내가 이 곳을 떠나니 여기 저기서 난리가 나는군요. 금방 돌아올테니 너무 슬퍼 말거라. ;;

잡생각을 뒤로 하고 용산역에서 내려 '나가는 곳' 표지판을 보니 촌스럽게도 마음이 두근두근하더라고요! 야 진짜 나가는구나! 출국도 아니고 참.







도착하니 7시 45분쯤 되어 35분에 있는 새마을 열차는 타지 못하게 됐습니다. 어차피 조금 더 싼 무궁화호를 타고 싶었기 때문에 잘됐다는 생각을 하기엔 조금 무식한 것 같기도... 8시 25분까지 약 30분 정도... 시간을 버리는 건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추위는 못 참겠더라고요. 온장고에 담긴 대추꿀차를 사서 손도 녹이고 여행 내내 물병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아침을 안 먹고 나온터라(밤에 많이 먹어서 괜찮,,,) 무언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 시간에 역사 내 음식점들이 많이 열지 않았더라고요. 집에서 가져온 귤이랑 곶감을 먹었습니다. 시장에서 많이 먹어야 했기에...






열차느님을 기다리며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보단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이번 여행을 위해 폰카(HTC EVO로 예전 디카보다 사진이 나은 것 같습니다), 필카까지 챙기고 후배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빌렸는데요. Canon ixus 210 핑크였습니다. 이걸로 사진만 800장 넘게 찍고 동영상까지 빵빵하게 찍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후배에게 감자탕을 사줬다는 소식입니다. 어서 2월 1일날 사진 강좌를 처음으로 들어 한창 좋은 사진에 대한 열망이 고양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어서 카메라를 사야 할 텐데요. 여하간 이 때까지는 폰카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디카를 사용하지 않다가 다음 사진부터 디카를 썼습니다.







8시 25분 기차인데 15분에 왔습니다. 재빨리 탔습니다. 만 25세 이하 청춘들에게만 허락된 내일로 여행을 가보지 못했지만 '바이트레인'이라는 기차 여행 카페엔 가입했기 때문에 거기서 본 대로 맨 앞자리에 앉아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를 충전했습니다. 제 자리는 원래 거기가 아니었지만 기차는 매우 한적했기 때문에 결국엔 그 자리에 앉아서 쭉 갔습니다.




기차가 움직이자 이런 트위트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하하하. 어딜 이동할 때는 주로 고속버스를 탔거든요.






이것저것 끼적이기도 하고(곶감은 뭐냐) 계획을 점검하기도 했습니다. 보령여행과 관련한 앱을 다운받고 관광안내소에 전화도 겁니다. 고속버스와 달리 자유로운 움직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화장실이 마음에 들었는데요. 박력있는 기차 화장실의 물내리기에 반하기도 했습니다. 손을 씻고 세면대 앞에서 기분 좋아서 한 방! 


스마트폰으로 연합뉴스의 속보를 받아보고 있는데요. 한나라당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는 속보가 떴습니다. 많이 놀랐습니다. 아니나다를까 트위터에서는 갑론을박이... 다들 비꼬기 바쁘더라고요. 그것도 매우 재미있는 표현을 써서 말이죠. 그래서 저도 동참했습니다. '권력이 줄줄 새누리당'








기차가 열심히 달린 결과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바뀝니다. 건물이나 공장으로 가려졌던 시야가 탁 트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수많은 기차역을 지나며 제가 가보지 못한 곳들이라는 생각에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대천역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풍경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네가 보령땅이로구나!








끼약 도착! 대천역에 내리고 역사 내로 진입하자 외국인 언니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보입니다. 보령머드축제 광고 보면 외국인밖에 없어요. 하긴 우리 학교에서 국제학기 할 때에도 보령머드축제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언어가 필요없이 몸으로 노는 축제라 세계인에게 소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머드축제 없이도 좋은 보령을 탐구하러 온 거라 경쟁의식을 가지고 째려봤습니다.








관광안내소입니다. 기차와 고속버스를 고민하다 기차를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관광안내소가 기차역사 내에 위치해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천역과 보령종합터미널은 걸어서 5분 거리이지만 초행길이라 헤맬 것 같아서요. 출발하기 몇 일 전부터 유선으로 관광안내소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관광안내소 언니의 얼굴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이 곳에는 보령 관광안내책자는 물론 관광지 안내서, 그리고 충남 여행과 관련한 책자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꼭 들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당장 버스를 타고 시장으로 가야했던 터라 버스편을 문의했습니다. 이렇게 친절하게도 터미널, 신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들의 시간표를 알려주셨습니다.







안녕 대천역아? 대천역 부근은 한적합니다.








시내에 가서 어서 점심을 먹고 싶었던 저는 역 바로 앞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멈춰서는 걸 보고 기사 아저씨께 여쭤봤습니다. "시장 가나요?" 아저씨 말씀하시길, 해수욕장 가는 버스라고 합니다. 시내에 가려면 대천역에서 나와서 왼쪽 방향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주의하시길. 시내나 대천해수욕장 가는 버스는 자주 와요. 버스비는 서울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국민카드로 버스요금을 낼 수 있습니다. 시골에 갈 때마다 버스카드가 먹히지 않아 동전 챙기기가 여간 까다로웠던 게 아닙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만약에 대비하여 동전을 많이 챙겨갔지만 국민카드 덕에 차비를 편하게 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명문당 사거리'라는 안내음을 듣고 내렸습니다. 버스에 탄 할머니께 여쭤봤더니 여기서 내리면 시장이 있다고 하셔서요. 명문당문구는 매우 클래식한 외관을 지니고 있군요. 조금 걸으니 시장들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내리니까 현대시장이나 다른 시장들이 먼저 나와서 한내시장, 중앙시장을 찾는 데 약간은 헤맸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천에 대한 인상은 특별할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걷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