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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생활자

여행생활자로 이적 선언. 겨울날 대천항에서







여행이란 단어랑 친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그 단어랑 친하지 않을 뿐이지, 일상을 여행처럼 삽니다.
유성룡 씨가 말했던 '생활여행자'랄까요?

내 일상이 펼쳐지는 공간과의 거리는 별 상관 없습니다.
매일 가는 곳에서도 낯섦과 새로움을 발견한다면 그게 여행이 아닐는지.

그런데 이번 해부터는 여행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방아 찧을 것 같네요.
벌써 1월에는 친구와 급작스럽게 광주를 다녀왔고,
곧 말끔히 건강해지실 할머니를 뵈러 영동에도 잠깐.
그리고 저 사진을 찍은 보령(대천)에도 씩씩하게 혼자 갔다왔군요.

역마살을 자랑스레 여기는 제가, 그렇게 돌아다니고 시간 낭비를 좋아하면서도
사람들이 말하는 여행을 실행하지 못한 것은
빡빡하게 일정을 짜고 꼼꼼히 계획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한다면 ~로 떠나라' 등의 강제가
나를 등 떠밀었고, 어느새 떠나지 못한 나는 숙제처럼 쌓였습니다.

하지만 『소도시 여행의 로망』이라는 책을 리뷰 목적으로 읽은 이후에
제 강박은 오해였으며, 여행의 필수 조건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곳을 내 느낌대로 걷고 느끼면 그 뿐,
관광지 찍고! 사진 박고! 이런 메뚜기 여행, 원치 않으면 안 하면 그만인 거죠.

지역의 시장은 꼭 가봐야 할 것이고,
민속/풍속(굿, 제례)을 확인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우리나라 근대사의 생채기가 패인 곳을 주로 가고 싶습니다.
어딘들 위의 세 가지가 없겠습니까.

가 본 곳이 별로 없어 유리합니다.
저만의 지리부도를 그릴 수 있겠죠?

북극추위가 몰아닥쳤던 2월 2일, 3일 보령 다녀왔어요.
덕분에 지금 심한 감기에 들었지만, 마음만은 가뿐하군요.

혼자 다녀왔는데 지역 어른들이 '용기있다', '불쌍하다' 뭐 이런 말씀들을...
전 원래 혼잣말도 잘 하고
남들과 같이 있을 때 외로울 망정
외로움을 잘 타지 않아서 아무렇지 않았는데
남들 눈엔 그렇게 보이는군요. 통감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겐 다음부턴 혼자 안 다니겠다고 했는데
아마 말 뿐일걸요. 이미 나홀로 여행의 매력을 알아버렸는데요.
뭐 그렇지만 제 특이 취향에 거부감만 가지지 않는 동행자라면 반가울 듯.
이게 최근에 친구랑 광주갔을 때 친구가 지갑 잃어버린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현금 20+상품권 30정도니까 아니라고는 말 못하나요)
괜히 나 때문에 잃어버린 것 같아 여간 신경쓰인 게 아니긴 합디다.

누군가 여행 갈 땐 '친구'와 '카메라'를 버리고 가라 했는데
당분간 카메라는 버리지 않으려고요. : )
요즘 사진도 배우는걸요.



빨리 블로그 정리도 해야 하고,
늦깎이 휴학을 하기로 결심한 만큼 이번 학기 멋지게 낭비하겠습니다.
낭비에서 둘째가라면 서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