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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정치!/영화

영화 물없는 바다 - 따뜻한 환상 동화




물 없는 바다
감독 김관철 (2009 / 한국)
출연 김동현,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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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가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 아무리 춥다 춥다 하지만 우리가 발가벗고 다니던 구석기 조상님들만큼 춥겠어? 외풍 심한 우리집만 빼고 여기도 저기도 온열 빵빵 터져주니. 털없는 인간의 서러움 달래고자 오리니 거위니 다른 동물들의 털을 그러모으는 반칙까지 서슴지 않으니. 사실 현대인들이 진짜 추운 건 외로운 마음일지도 몰라. 난로 옆에 혼자 앉아 있는 것 보다 어디메 여행지에서 친구들이랑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더 따뜻하게 느껴지니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물 없는 바다>와 같이 따뜻한 영화 한 편이 어느 월동 준비보다 더 필요할 수도 있어.



학교에서 본 포스터. 알고 보니 감독님이 우리 학교 대학원생이시라고.





<물 없는 바다>는 제목만 들어도, 아니 저 포스터만 봐도 뭔가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할 것만 같았어. 바다에 물이 없다니. 게다가 부처님 급의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포스터 사진이라니. 마치 엄청난 깨달음을 얻고 난 후의 모습 같잖아. 그만큼 어려운 영화일 것 같았어. 영화를 혼자 보러 가게 된 것은 단지 시험기간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야. 난해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는 친구와 놀기 위해 보기에는 약간 좋지 않더라고. 혼자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친구랑 보게 되면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하잖아. (나의 경우는 그래) 뭔가 깨달아도, 심각한 생각에 빠지고 싶어도 괜히 젠체하는 것 처럼 되잖아.







영화를 보는 날은 학교 어학원에서 들었던 수업의 종강날이기도 했어. 이제 본격적으로 시험 기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지만 홀가분한 마음이 컸어. 게다가 여자휴게실에서 자다가 수업을 위해 슬슬 깨어 손전화를 봤더니 왠걸? 믿기 힘들 만큼 기쁜 일(M사)이 생겨서 이 날 기분은 최고였어. 수업이 끝나고 영화 시작까지는 20분. 마을버스 하나만 타면 서울아트시네마 도착하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행여나 늦지 않기 위해 헐레벌떡 뛰는 와중에도 얼굴엔 미소가 감돌았어. 기분이 좋으니까 영화에 대한 기대감마저 커가는거야. 영화 혼자 보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흔치는 않아서 그만큼 묘한 설렘도 느껴졌고 말야.







영화 시작 전 뜨는 시간을 이용해서 감독님과 남주가 무대 인사를 하셨어. 영화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던 난 쫑긋! 귀 기울여 들었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가 될 겁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작품을 하셨나봐. 지금부터는 중계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작품 평을 해 볼게.


여기 두 남녀가 있다. 남자는 틱 장애를 가지고 있다. 반복적으로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틱 장애. 그 중에서도 욕을 하는 유형이다. 사람들은 이런 남자의 병을 오해하기 일쑤고, 이에 남자라고 별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자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동생을 폭력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 사회로부터 마음은 굳게 닫힌 지 오래다. 죽음을 준비하여 음울한 하루하루를 마지못해 산다. 다시, 여기 두 남녀가 만난다. 어떤 이야기가 빚어질 것인가.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데 기대를 걸었다. 포스터나 영화 제목이 주는 예술영화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리얼리즘적인 시각으로 두 남녀의 척박한 삶을 그려낼 줄 알았다. 그러면서 희망을 말하는 방식은 아방가르드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이토록 통속적이고 대중영화의 문법을 구사했을 줄은 몰랐다. '힐링 로맨스'라는 수식어를 미처 보지 못한 탓이었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기존 영화의 전형적 문법들을 좇는다. 두 남녀가 처한 현실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고 그저 피상적으로 묘사된다. 틱 장애를 지닌 남자는 착하다. 순해 빠졌다. 이것 또한 기대와 어긋나지 않는 설정이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서서히 마음을 연다. 둘은 애틋한 감정을 틔우고 어떤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이룬다. 전형적인 동화이다. 환상 동화 말이다.
요새 학교에서 영화 수업을 하며 이데올로기적인 함의를 밝혀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영화가 실상은 우리가 기대하는 환상을 현실인 양 보여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발견해내려고 날카로운 눈을 떴었더랬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환상에 휩싸여 순수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니 이러한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그냥 서사에 몸을 맡겨 버렸다. 재미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물 없는 바다'로 떠날 때, 악당을 물리치고 다시 길을 가는 장면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생각날 정도였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의 세계는 단순화되어 있다. 여자와 남자는 티끌없이 맑은 영혼을 지녔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은 선의 진영에 속해 있다. 이 세상에 없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 르누아르 전시회를 간 적이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큰 전시였다. 만 원이나 내고 들어간 전시에서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행복을 그린 화가'라는데 그림보다는 전시장 벽면에 인쇄된 텍스트에만 관심을 쏟았다. 기운이 빠진 채로 전시를 다 보고 내려오는 데 한 쪽에 작게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무료 전시였고,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나는 오히려 이 전시에서 생기를 머금을 수 있었다. 여기, 지금, 우리에 대한 풍자와 비판으로 알차게 살이 오른 작품들. 나는 행복을 찬양하는 작품은 의심하는, 타고난 삐딱이다.





와. 나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하면 이런 발음 할 수 있는 거야? '낙원삘'





+ ) 남자 주인공의 틱장애에서 비롯한 욕에 사람들이 웃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웃음을 자아냈다. 처음에는 불편해하다가 나도 웃어버렸다. 그런데 이를 웃음의 소재로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은 비도덕적인 것 아닌가? 아니면 그게 현실인가? 진심에서 비롯된 욕이 아니므로 웃어넘겨도 되는, 실제 틱 장애인은 이를 원할까?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