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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정치!/영화

영화 <종로의 기적> :: 이건 분명 달달한 염장 연애물이야




 


 게이의 사랑,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나.
 사랑이 아니고서는 무어라고 표현할 겐가. 친구사이?
 영화 <종로의 기적>은 분명 사랑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되나
       
          -복효근의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전문


 




 'LGBT 영화제' 관심있음?

 얘가 뭐라는거야. LPG 가스나 LPGA는 들어봤어도 말이야. 모음은 찾아볼 수도 없어 읽기도 힘든 저 괴상망측한 조합은 뭐란 말이지? 재차 물어보니 영화제 이름인데, LGBT는 △레즈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의 줄임말이란다. 10여 개가 넘는 반의 뽑기 확률을 물리치고 여고 3년 내내 같은 반을 한 친구라서일까? 뭐 어쩜 이렇게 타이밍이 좋아? 난 안 그래도 영화 <종로의 기적> 시사회에 응모한 터였다. 선정 발표가 늦어 설레발이 될까 염려한 나는, 몇 마디 나누다 이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문자를 마쳤다. (갑자기 스마트폰이 아니여서 카카오톡을 마다하고 문자를 하게 만든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LGBT를 총칭하면 '성적 소수자' 정도가 될까. 여중 여고를 나온 본인은 레즈비언에 대한 얘기는 꽤 많이 들어왔다. '축제 때 매점 앞에서 키스를 하는 언니들을 봤다'느니, '몇 반에 누구가 레즈라더라'하는 얘기는 아주 비밀스럽고 위험한 얘기거리였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건 사랑 얘기였다. 그래서 호기심을 더욱 강하게 당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선생님들 빼고는 남성을 좀체 발견할 수 없는 장소다보니 그런 류의 얘기는 흔치 않았다. 소위 비평준화 상위고라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모여서인지 또래 소년들과 연애를 하는 아이들도 많진 않았고. 또 이런 얘기를 할 때 빼먹을 수 없는 소재가 있지. 여성들만 득시글거려서인지 몇몇은 '남성적', 아니 '소년적'인 모습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 운동부 언니들은 큰 키에 반반한 외모, 그 미소년적 풍채에 환호성을 많이 받았지. 이런 '멋진 소녀들'을 보며 느끼는 긴장감 내지는 성적 정체성의 혼란(?). 가끔 느껴봤을 법도 한데.


 


커밍아웃순 Coming out soon 이라니. 실로 끼스러운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게이를 처음 보다

 이 정도가 성소수자들에 대한 경험과 지식의 끝이었다. 주위에 성 소수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보니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본인은 여고 때 소년다운 소녀에 속했다. 그렇다고 외모에서 소년다움을 지향했던 것은 아니었다. 머리카락은 단발이거나 길렀다. 교복 치마도 항상 챙겨입었다. 그런데 성격이 하도 털털하다보니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남녀공학인 대학교에 들어오니 많이 바뀌었다. 털털한 건 여전하지만(?) 나름의 여성성을 기르는 중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레즈비언이니 하는 얘기도, 관심도 사라졌다. 그나마 고등학교 땐 주변에 들리는 소문이 많았으니 관심을 가졌다면 말이다.


이건 분명 시사회장임에 틀림없다. 사진이 이렇긴 해도.




 "게이를 처음 본 분들도 계실겁니다." 영화 상영 전 이혁상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그런 분들일수록 성 소수자들에게 차별적인 공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얘기를 들으니 무릎이 탁 쳐졌다. 정말 그렇구나. 우리 학교, 유교 학교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학생사회도 학교도 약간 경직된 느낌이 든다. 어느 날 화장실 문 앞에 붙여져 있던 작은 쪽지. 'ooo대 이반 모임. club.cyworld.com/????' 학보사 기자로서 신선한 학내 모임을 찾고 있던 터라 알아봤는데, 우리 학교처럼 이반(성 소수자) 모임이 비활성화된 곳이 드물다고. 어쨌든. 내 나름대로 "난 개방적인 사람이야. 주위에 성 소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도 이성간의 사랑과 다를 바 없기에 아무렇지 않아. 사랑의 대상에 있어 성별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생각해 왔는데. 현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러한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일 수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소준문 감독의 말이 들린다. "성 소수자들은 곁에 있는 친구 같은 사람들. 고개만 돌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종로의 기적>은 그렇게 아주 편한 친구처럼 찾아왔다.





종로의 장소성을 전복하다


 처음 이 영화의 존재를 맞닥뜨렸을 때 관심을 가진 것은 다름 아닌 '종로'였다. 도시, 장소성, 공간에 대해 관심이 있다 보니 지명만 나와도 눈빛이 반짝이거든. 게다가 '예술로 매개된 도시'는 관심 중에서도 고갱이다. 얼마 전 박찬경 아저씨의 작품에 나타난 장소성을 가지고 발표도 한 나는, 박찬경 신봉에서 약간 벗어나고자 다른 작품들에도 눈을 돌려보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종로의 기적이란다.

 종로가 어디야? 아주 오래 전부터 정치 경제 삶의 중심지였다. 조선의 600년 수도였는데, 한 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오래 지속한 것도 드문 일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고정적인 관념이나 통상적인 사고의 틀이 만들어지는 곳도 종로인데! 이 곳에서 '끼스럽게! 용감하게! 자신있게! 우린 지금 종로로 간다!'니. 편견을 깨버리고 걷는 이들의 모습이 통쾌하지 않은가. 실제 밤이 되면 남성과 남성이 거리낌없이 깍지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는데, 정말 멋졌다. 왜 하필 종로구 낙원동에 그들은 사랑을 꽃피우는가! 감독 말마따나 "게이들을 위한 작은 '낙원'"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인가? 아님 어떤 내력이 있는 것인가. 이를 탐구하는 것도 참 재미있을 것 같았다.

 종로가 아니어도 이 곳이 장소성에 크게 기반한 영화라는 증거는 더 있다. 소준문 감독이 촬영지를 물색하며 부산(!) 범일동 파고다극장을 둘러보는 것이며, "이태원은 종로와 더불어 게이 커뮤니티"라고 말하는 대사에도. 파고다극장은 성인물을 상영하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게시판에 쪽지를 남기거나 벽에 낙서를 하는 방식으로 게이 커플을 탄생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같이 성적 소수자들에게 관대하지 않은 공간이면 공간일수록 집약된 공간에서 게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며 모여야 할 필요성이 증가하는 것 같다.

 '게이지수'라고 아시는가? 결혼한 게이의 수를 따지는 것인데, 이게 '창조도시'의 세 가지 요건인 3T(기술 Technology, 인재 Talent, 관용 Tolerance) 중 관용을 따지는 척도라고 한다. 게이는 가장 마지막까지 차별받는 집단이라고 한다. 그래서 게이의 결혼을 허용하는 사회의 관용이 발달된 곳일수록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창조적이라나 뭐라나. 그러니까 게이가 살기 좋은 곳일수록 좋은 도시라는 거다. 이 말이 게이의 씁쓸한 처우를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지만 말이다. 종로의 희망을 여기서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