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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정치!

[영화 글러브]손발이 오글거려 소멸될 뻔 했지만 귀여운 영화


아쉽게도 포스터는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이게 카피만 빼면 그나마 낫다.



 매스컴을 통해(우와 완전 오랜만에 써 본다. 매스컴은 이제 존폐 위기에 처한 말인 듯) 처음 <글러브>를 접했을 때, 솔직히 내 느낌은 '그닥'이었다. 나는 막 개봉하여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아주 막연한 인상에 기반하여 판단할 때가 많다. 열렬한 씨네 키드는 아닌 탓에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영화 홍보는 영화 자체와 철저하게 별개라고 생각하며 그 괴리에 몸서리치는 나이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언론에 흩뿌려진 정보를 믿지 않는다.


 스포츠 분야에서 성공신화를 영화로 만든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았다. 박진감 넘치는 승부, 영화의 흥행과 스포츠의 흥행은 많이 닮아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인지 모른다. <글러브>를 빼닮은 영화들은 참으로 많다. 단연코 개봉한 지 오래 지나지 않은 <맨발의 꿈>이 오버랩됐다. 오합지졸 스포츠단이 승부수를 띄우고 거기에 노력을 버무려 감동의 이야기를 만드는... 이런 식의 전개를 가진 영화는 이제 진부하다. 금방 시들하겠거니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시사회를 본 사람들로부터 심상찮은 얘기가 들려오더라. 우리은행에서는 금융상품까지 출시했고 말이다. '오, 이 영화는 뭔가 다른 게 있나?' 많이 궁금해졌고, 설 연휴 탓에 느지막히 오늘 고속터미널역 근처 씨너스 센트럴에서 보고 왔다.

 





 보고 온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손 발이 오글거려 소멸될 뻔 했다'


 뭐가 다른가, 기웃거렸던 나는 한참 잘못 짚었다. 매우 같고, 뻔하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영화는. 눈물을 뽑아내고, 감동적 요소와 중간에 적절히 배치된 유머. 그리고 연기력까지.




0 ; 오글거림_ 작년에 유행처럼 번졌던 손발 오글거림이라는 케케묵은 단어를 다시 꺼내들어야만 하겠다. 요 영화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도 능력있게 오글거리는 장면과 설정을 만들어냄으로써 오글거림 종결자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마지막 홈런은 너를 위한거야'라는 김혜성 군의 낭만적인 고백이 인상깊었다. 야구에는 사랑이 있다며 GLOVE에서 G를 빼고 LOVE를 야구장 전광판에 자랑스레 띄우는 김상남 선수의 호기로움도 대단했다. 이게 젠 체 하는 게 아니라 귀여워서 꽤나 즐거웠다.

 이건 딴 얘긴데, 가슴이 오그라붙을 것 같은 이 감정은 이 용어가 유행하고나서부터인가 수시로 느껴진다. 기쁨 슬픔 노여움 등에 견줄 정도로 독보적인 매커니즘으로 ! 건강에 좋을까?



1 ; 눈물_ 한국에서 영화가 흥행하려면 눈물, 눈물, 눈물이 절대적이라고 한다는데. 본인은 영상물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 건 <광복절특사>. 그러니까 2002년 말 중학교 1학년 끝나갈 즈음이었다. 극장엘 잘 못 갔으면 불법다운로드라도 해서 보든가, 안타까움에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발칙한 생각도 해 보지만 본인은 다운로드하는 법을 몰랐다. 아니면 다운로드해서 보기에는 너무 귀찮았는지, 저작권을 수호하려는 신성한 의도에서였는지는 모르겠다 :-ㅣ 책을 보고는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왔으면서 영상물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은 대놓고 들이대서인가.라고 추측하고는 있다. 영화 <글로브>를 보는 씨너스 센트럴 1관에서는 아니나다를까 중요 대목에서 훌쩍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뭐 영화 내에서도 오열 장면은 자주 나오니까.

 

2 ; 감동_ 이 영화를 까는 것이 양심에 찔리는 이유는 바로 소재에 있다. 영화에서 김상남의 매니저인 찰스정은 청각장애인을 벙어리라고 부르는 것을 자주 교정한다. 용어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저렇도록 삶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사회에서 모진 대우를 받는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영화를 함부로 욕할 수 있는가. 이런 사고가 깔려서인지 이 영화를 뻔하고, 오글거린다고 얘기하는 와중에도 나는 이 영화를 지지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뻔하고 오글거려도 볼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 뻔함과 오글거림이 적어도 기분 나쁘지는 않다. 강우석 감독은 가끔 이런 무기를 사용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한반도>의 애국심이 같은 맥락.


3 ; 유머_ 같이 본 친구가 그랬다. '니가 하도 웃어서 난 울 수가 없었다'고. 난 원래 영상물을 보고 안 우는데 너는 왜 안 울었냐고 묻는 내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 그만큼 난 이 영화가 참 웃겼다 ! 노련하게 눈물과 유머를 잘 섞어 놓은 영화.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와 깨알같은 설정으로 끊임없이 웃겼던 영화.


4 ; 연기_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다. 군인인 내 남자친구는 내가 <글러브>를 봤다니까 <맨발의 꿈>이랑 주연배우도 같은 거 아니냐고 물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박휘순 님과 정재영 님이 참으로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 골격도, 몸도, 말투도, 표정도, 연기도, 눈빛도, 그리고 캐릭터의 성격이 닮았다. 한량, 또는 건달 연기로 그들만한 배우가 없는 것 같다.(으하하) 캐릭터의 성격 곡선은 그저 한량건달에서 그치지 않고 개과천선 괄목상대로 나아간다는 점도 닮았다. 아이들에게 감복해 자신의 인생까지 되돌아보게 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닮아도 되는거야? 그런데 둘 다 허벌나게 좋다. 익살맞고 한량끼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내 눈에 멋진 그들이다.





맨발의 꿈,

글러브, 정재영

땀 흘리는 사진으로 뽑아 왔다. 멀리서 보면 둘을 구분하지 못할 것 같다.
어째 수염은 스포츠단 지도하는 이들의 필수품인감유?



전체 평_

긴 말 필요 없다. 좋다. 짝짝.

오글거리고 뻔하다고 해서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꼭 참신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재영 님은 무척 사랑스럽다. 이 영화 검색하다가 강우석 감독이 우리 학교라셔서 갑자기 자랑스러워 그런 건 아니다.

더불어 리뷰에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영화에 빚을 졌다. 김상남 대사는 나태한 나를 흔들어 깨웠으니까. 괜히 영화보고 툴툴댔지만 세상에 '우리가 왔다', '내가 왔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