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멋대로 산다2011.01.24 15:15















오전 10시 경. 경춘선 전철 첫 시승 소감 한 마디 :
전 좌석의 노약좌석화 또는 산악회 전세철화 ;ㅁ;



미투데이에 올린 글 그대로이다. 이 당황스러움은 비단 경춘선에 올라탔을 때부터의 것만은 아니었다. 1호선 회룡역에서 도봉산역까지 전철을 탑승하고, 7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도봉산역에서 내렸을 때부터였다. 고어텍스, 하이-퍼포먼스 등 각종 능률에 관한 수식어가 붙은 기능성 등산복-그것도 보는 이의 인식에 약간의 혼란을 동반하는 총 천연색의-과 거북이 등껍질마냥 안전하게 착 달라붙은 등산 가방, 거기에 바늘과 실처럼 따라붙은 등산 스틱과 대롱대롱 물컵, 아주머니 아저씨 막론하고 아기자기하게 매어 놓으신 쁘띠 스카프 !

 이들은 모두 경춘선을 향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다 춘천 가는거야?" 등산복 무리 중 한 아주머니가 경탄에 겨워 내뱉으신 말이다. 오전 9시 반 즈음 모든 이들은 춘천을 향해가고 있었다. 7호선 상봉역에 내려 경춘선 쪽으로 갔다. 춘천을 가고 있는데 지하철에서 내리지 않았다라는 게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었던지 ! 새로이 지은 지하철을 너무나 오랜만에 본 나는 매우 생경했다. 새 것이 주는 그 느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모두 허물고 새로 지어버리는 게 일상이라서 그렇다. 그렇다고 여기서 논할 건 아니고.

 다산콜센터에 몇 번이고 물어봤다. "상봉발 남춘천행 급행 열차 시간표가 어떻게 됩니까?" "한 시간에 세 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상봉발 남춘천행 급행 열차 시간이 어떤지요?" 한 시간에 세 대라고 고집스레 주장했던 내 생각은 틀렸다. 급행은 1시간에 한 대 있고 일반 열차 2대, 그렇게 해서 총 3대이다. 주말 경춘선 시간표는 급행이 매 시간 정각에 있으며, 20분 간격으로 일반 열차가 2대 있다. 소요 시간은 급행이 1시간 4분, 일반 열차 1시간 15분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고.

 떫지 않은 상큼한 맛에 요즘 자주 사먹는 데일리 레몬 워터 때문에 10시 20분 차를 놓쳤다. 2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분했다. 그리고 경춘선의 분위기는 정말 일반 지하철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시끌벅적한 게 시장통에 와 있는 거 같았다. 다들 삼삼오오칠칠 모여있기 때문에 일반 지하철에서의 점잖, 위엄, 무관심, 차가움이 없었다. 다들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으며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주책맞은 모습을 보여주셨다.............. 자리쟁탈전은 미친 듯 치열했다. 주말에 시간 맞춰 가면 절대 자리 못 잡는다. 20분 전에 기차가 정차하고 기다리는데, 그때 가야 그나마 한 자리 얻을 수 있다.

나 같이 새파랗게 어린 족속은 자리 앉으면 그 즉시 어른 공경의 미덕에서 아득히 멀어질 것이다. 주위에 온통 노약자분들이 서 계시는데-설혹 그들이 등산복을 짱짱하게 착용하신 운동광이라도- 어느 누가 맘 편히 앉아 있으랴? 그렇게 자리를 양보하고 시린 엉덩이를 느끼며 엉거주춤 출입문에 기대어 쓸데없는 노선표나 보고 있는 그대여. 너무 슬퍼하지는 말아라. 마음 착한 당신에게 드릴 선물은 회색 도시의 그것과 다른, 소소하고 비어있지만 그래서 따뜻한 주위 풍광이다. 물론 1시간 15분이 짧지는 않다만..........

처음에는 다소 불쾌했다. 그런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여기가 대안적인 지하철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쾌하고 떠들썩한 지하철이다. 영화 쿠바의 연인에서는 쿠바 버스의 유쾌함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모르는 이들끼리 노래를 부르며 놀고, 농담을 주고 받으며 삶에 대한 예찬을 보여준다. 물론 경춘선의 그 활기는 아는 사람들끼리의 그것이다. 끼리끼리 모여 노는 거라 혼자 탄 나 같은 사람은 외로운 섬이 될 우려도 있다 ;ㅁ; 하지만 조금의 용기가 있다면 아줌마 아저씨들의 얘기도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나이 많으신 분들의 유쾌하고 실제적인 모습들을 너무 많이 봤는데, 영상을 제작하고 싶다는 충동까지 들었다.


11시 급행을 탔기 때문에 1시간 4분 동안의 짧은 여정이었건만 주위에서 여행 분위기를 마음껏 발산하는 사람들 덕분에 떠나는 기분을 만끽했다. 일상에 파묻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도 했으며, 의외의 깨달음도 얻었다.



졸기 전까지 내가 본 것들을 기록해 두련다.

아무도 없는 낚시터와 얼어버린 인공 호수에 원 모양으로 지쳐진 수많은 원
그리고 거기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아저씨의 뒷모습
똑같은 모양으로 자리한 나무와 소나무
계단식 논밭의 아찔한 반복
버스 차고지를 위에서 내려다보니 부챗살 모양, 날개 모양 같기도
누군가 가지런히 패 놓은 장작
나를 계속 따라다닌, 중천에 걸린 해
똑같은 옷을 입구 족구장에서 몸 푸는 10명의 아저씨들
다 낡아빠진 저층형 아파트
앗! 타이어 신발보다 싼 곳(읭?)


그 이후에는 자리에 앉았다.
내가 자리를 양보해 드렸던 할아버지가
중간에 내리셔서 날 부르시더니 앉히셨다 ㅋ_ㅋ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봉에서 타서, 춘천에서 내린다.
남춘천에서 내린 난 춘천과 단 한 정거장 차이였건만
왠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을 정도라니까.

Posted by 카프카에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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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와...경춘선이라...?!
    작은아버지 성함이라 좀 깜짝놀랐네요
    전 서울살면서 지하철 자주타고다니는데
    경춘선이 생긴지 이포스팅 보고 알았네요..
    지하철타면서 멍하니 지하철노선도를 볼때도 많은데
    그동안 난 뭘 보고 다녔나 싶네요...ㅠㅠ
    춘천 멀지않군요! 노원주민이라 4호선 7호선 완전사랑하는데
    시간날때 가봐야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가장 유쾌한 지하철이라!?

    2011.01.25 21: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작은아버지 성함이 경 씨세요?
      성함이시라니 작은아버지랑 꼭 가세요 ㅎㅎ
      노원은 두 개나 와서 좋겠어요......ㅋ_ㅋ
      유쾌하지만 혼자 타면 약간 외로워진답니다 ㅠㅠㅠ
      군중 속의 고독이 딱입니다 !
      제가 그랬고요 ㅋㅋㅋㅋ

      2011.01.25 23:18 신고 [ ADDR : EDIT/ DEL ]
    • 박 자, 경 자 ,춘 자 입니다...
      두호선이 있어서 좋죠...;
      하지만 환승구간이 긴편인게..ㅠ

      2011.01.30 01:55 신고 [ ADDR : EDIT/ DEL ]
  2. 춘천이라, 가보고싶네요
    그런데 춘천에 사람이 넘쳐난다길래 가기실쿵
    춘천~~날씨야 빨리따땃해져랏

    2011.01.26 00:57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