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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정치!/영화

영화 <황해>, 휘모리 장단처럼 몰아치는 이야기








흥행을 이룩한 영화 추격자의  감독 나홍진과, 배우는 추격자의 전직 형사 김윤석, 그리고 추격자의 싸이코패스 범인 하정우... 언론은 영화 황해를 이렇게 말했다. 영화 추격자 팀이 또 한 번 의기투합한 영화라고. 이렇게 얘기가 나돌 때 관객들은 과연 영화 황해에 대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숨막히는 추격씬? 한심한 한량에서 나름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의 등장? 그도 아니면 '4885'?

















"'추격자'가 까무라쳤다면 '황해'는 죽여버린다."



물론 추격자도 그 잔인함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관객들, 심심찮았겠지만. 영화 황해는 뚜껑을 따고 보니 많은 이들이 혀를 내두르게 된 것으로 정평이 났다.
어느 정도냐면, 면가로 분한 김윤석은 "'추격자'가 까무러쳤다면 '황해'는 죽여버린다."라는 살벌한 비유를 신문 인터뷰에서 말한다. 깜짝놀랄만큼 이어지는 살인 행렬에 관객들은 징징대며 훌쩍거린다. 못 볼 걸 봤다는 거다. 영화 깨나 보는 사람들도 '이건 아니다'라며 행렬에 동참한다. 감독은 사과하기에 이른다. "너무 잔인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너무 잔인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사실 본인도 놀랐다. 위드블로그의 리뷰어로 선정되어 영화를 보게됐는데, 영화 초반부터 선득하게 끼쳐오는 살풍경에 리뷰어 신청부터를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이건 내가 이전에 영화 부당거래를 리뷰할 때 '현대인들이 현실을 마주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지극히 현실적인 고발형 영화를 싫어한다"고 말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영화지 않은가. 영화 황해에는 물론 당대의 사회상과 서민(조선족과 연변 사람들, 그리고 모든 소시민들)&부유층의 심리 묘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하지만 '레알'을 추구한 잔인한 영상미는 계급 인식이라는 말로 두둔하기엔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잔인함에 짓눌려 이 영화가 놀랍도록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비유를 하나 해 보자. 건물을 지을 때 골근은 떠받치라고 있는 것이다. 이는 토대이며 중간 과정일 뿐, 완성품인 건물에서는 보이지 않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영화 황해는 골근을 드러내고 있다. 시나리오에나 있어야 할 법한 서사 구조(또는 장소였던가)에 따른 넘버링을 관객들에게 까발리고 있는 것이다. 블랙 바탕에 흰 글씨로 선명하게, 페이드 인, 아웃 효과까지 주면서 말이다.

이는 각본이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스토리를 꼭꼭 압축하여 놓았으니 이 정도에서 파티션 분할은 있어줘야 여러분들 이해하는 데 무리 없을 겁니다.'라고 속삭이는 듯 말이다. 영화 황해는 부지런하다. 한 순간이라도 뻔한 예측이 가능하도록 놔두질 않는다. 휘모리 장단처럼 쉴새없이 몰아치는 사건의 마당에서 관객은 '다음은 이렇게 되지 않을까?'하는 소소한 추측의 전의를 상실해버린다. 그저 내 몸과 머리를 맡기리라. 구남의 시선이 가는대로, 의식이 흐르는대로.
















"1년간 난 뭘 해도 구남이었다"



마침 구남 얘기가 나왔으니 그에 대해서 논해볼까? 여기서 하정우의 얘기는 제외하도록 하자. 읭? 무슨 얘기냐고? 이 영화에서 난 인간 하정우를 본 게 아니라 인간 구남을 봤다. 그 정도로 영화 황해에서의 하정우는 하정우가 아니고 구남이었다. 사실 아버지가 배우인 배우, 정도면 편하게 연기할 것 같다는 편견이 없지않았다. 제반 환경이 잘 갖춰져있을테니. 그런데 이 사람은 도대체 뭣때문에 저렇도록 치열하게 연기하는가. 너무나 압도당했다. "1년간 난 뭘 해도 구남이었다" 하정우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잠시 자신을 접어버리고 구남을 받아들인 배우 하정우에 대한 예우로 하정우를 얘기하지 않겠다.

영화는 구남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개병이 돌고 있다" 연변에서 빚에 깔리고 도박에 치이며 음울한 인생을 살아가는 구남. 자신이 어렸을 적 키우던 개 이야기와 현재 연변에 개병이 돌고 있는 심상찮은 상황을 병치해 얘기한다. 그는 면가 말마따나 불쌍하게 사는 주제 불쌍해뵈지도 않고, 울분에 찬 고집만 있는대로 부리는 '이상한' 놈이다. 맞다. 그는 정말 이상하다. 사실 도박이나 하며 인생 허비했고, 위기에 처한 결정적 계기가 된 한국행도 살인하려고 간 거고... 잘한 것 하나 없으면서도 관객의 마음을 잡아 끌고 있다.

사회에 개병이 들어서 사람들이 개와 사람을 구분 못하는 것일까. 마치 개병걸린 개처럼 취급받는 구남은 그 어디에도 의지할 데 없이 극한의 싸움을 홀로 지속해나간다. 마치
개같은 인생이다. 살인자로 쫓기기 전이 오히려 더 고되어 보인다는 생각도 들만큼 그는 갑자기 한 순간에 억울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아니다. 정말로 아름답게 사랑했던 부인과 볼살이 토실토실한 딸, 단란한 가족의 생계 하나도 책임지기 힘든 조선족의 경제. 그리고 한국인도 아니고 중국인은 더더욱 아닌 정체성이. 또 도박과 사기, 살인이 난무하는 주위 상황이 그를 또 휘모리장단처럼 매섭게 몰아친 것이다. 그가 억울하다고 소리친 것도 아니고, 대사도 별로 없어서 자신의 인생역정을 털어놓은 것도 없다. 주변 상황과 그의 '똥씹은 표정' 등이 빚어내는 충분한 개연성이 깃들인 인물 구남에 관객은 몰입한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구남은 대담하게, 간편하게 살인을 해치운다. 이렇게 휘모리장단이 고조되어 갈수록 초반부에는 내내 주눅들어있던 관객들이 재기넘치는(!) 살인 장면에서 북치는 고수처럼 탄성도 지르고 하는 걸 보면서 약간 어안이벙벙해졌다. 하하, 이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함께 살인까지 즐기게 만든거야. 아무튼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영화는 분명 매력적이다. 나홍진 감독이 박찬욱, 봉준호 반열에 오른건가 하는 기사까지 나돌고 있다. 나홍진은 분명히 쫓겨봤거나, 쫓아본 사람일 것이다. 추격자와 마찬가지로 황해에서도 화면을 가로지르는 시원한 배경음악과 긴박감 넘치는 카메라워킹과 영상미가 있다. 상대적으로 잔인함이라는 굴레에 무던한 미국에서 벌써 눈독을 들인다고 하니, 문화권을 넘어서는 스토리의 가능성을 본 탓일게다.

이토록 영화 황해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봤고, 또 잔인함에 자칫 묻히기 쉬운 이야기의 탄탄함을 꼭 기억하라는 충고를 지껄였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런 영화는 잘 안 보려고 한다. 원래 본인은 징그러운 영화를 의식적으로 피한다. 쉬운 예를 들자면 쏘우 씨리즈 같은 것?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 자꾸 자극되는 느낌을 받아서이다.

인간의 본성에는(지극히 동물적인 관점에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식욕. 이라 쓰고 성욕으로 읽는다.
둘째 성욕, 이라 쓰고 종족번식본능으로 읽는다.
셋째는 예상하셨겠다시피 종족번식본능.

그런데 내가 영화에서 자극받았다던 본능은 위의 세 가지는 아니고, 저 분류에 끼어주고 싶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어떤 것이다. 구남이든 누구든, 악인이 무고한 인간을 주저없이 죽이고 베고 찌르는 것을 보고 저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자칫하면 누구나 저런 징그러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날카로운 것들에 대한 접근성이 얼마나 좋은가! 이를 얘기한 작품을 작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보곤 지지받은 기분이 들었다. 또 나중에 삶을 견뎌내지 못하면 자살로 삶을 끝마치게 될 것 같은 엄한 두려움마저 드는 거였다. 차마 언급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미풍양속을 거스르는 발언 아닌가. ㅠㅠㅠ 그래, 난 내가 무섭다.














마지막으로, 아 정말 깨알같은 연기 펼치신 조성하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