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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TAX MESUPER 참혹한 첫 롤


화실 끝나고 샀던 드로잉노트 첫 장. 최초이자 마지막 미완성 그림_-




이번 해 4월 즈음에 퇴임 기념으로
내게 사진기를 선물했다.
바로 펜탁스 미슈퍼(PENTAX MESUPER)
디에쎄랄을 사기엔 돈도 아깝고 좀 두려웠고
친구가 상상마당에서 필카 수업 들으면서
신문사에 그 매력을 널리 전파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일에서 손을 놓게 되면서
그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
사진, 영상, 등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컸었고
사진부 후배놈들한테 물어물어 SRL클럽인가? 아닌데.
아무튼 카메라 커뮤니티에서 중고로 11만 원 쯤에 구매.
다른 건 다 좋았는데 1:2라서 좀 속았다는 느낌이 있긴 했다.

그래도 오토 기능이 있어서
사진 뭘 모르지만 초점만 잘 맞춰 가면서 이것저것 찍었더랬다.

그런데 양혜규 작가님 전시 갔었다가
친구가 자기 아버지가 필카 쓰시니까 좀 안다며
필름 갈아준다고 그러시다가 그러시다가 그러시다가.....
철컹, 열려버린 필름통,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사르러지듯
내 추억도 함께 공중으로!!!

그래도 오기로 필름스캔을 해 보긴 했는데
초반에 찍은 건 불완전하나마 남았다.

이게 어딘가 싶다.




빛 다 들어간 사진입니다.
미슈퍼는 원래 좋아요.





5월 5일_서울숲에서

서울숲 내 편의점에서 충동적으로 필름 한 롤을 사다_


이 날은 신문사 수습기자 과제 일환으로
선배 기자 인터뷰 겸 부서장 만남이 있던 날.
물론 나는 그 선배고 부서장이(었)다.

후배 셋과 나까지 네 명, TGIF에서 밥 좀 사주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근교로 나가서 인터뷰하자고 제안했다.
TGIF는 너무 시끄러웠거든.

한 번도 안 가본 서울숲을 가자며.

마실 물을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가,
필름이 보이길래 냉큼 샀다.
"얘들아 나 오늘 필카 개시해야겠어."





우린 적당한 정자 잡아서 인터뷰를 했다.
지금도 활동하는 두 놈이랑 군대간 한 아이가 보인다.

저 첫롤의 이글거리는 낭만,
내 사진은 빛이 들어가서 느낌이 안 사는구나 ㅠ_ㅠ.




간식겸 해서 사간 뻥튀기랑 물 몇 병이 보인다.
안 그래도 이 카메라는 플래쉬가 없어서 어둡다.
이러고 보면 7천 원짜리 내 헬로키티 일회용카메라보다 못하다니깐.




공교롭게 best of best가 된 사진이구나.
얘는 사진이 참 잘 나온다.
예전에 기행 갔을 때도 정말 최고의 사진을 배출해냈지.....




집에 가면서 단체 샷이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나무길에서 아무나 잡아서 찍어달라고 부탁!

나는 저기 빨간 골무 모자 쓴 사람.
윗옷은 하늘색 라이더 안에 빨간 옷을 입었다.
저 때의 대담한 깔맞춤이 그립구나 ㅋㅋㅋ






언젠가_당고개 역 부근에서

어둠과 빛을 사랑하다_




사진기 사고 가장 담고 싶어했던 건 빛, 조명, 달빛, 별빛.
이전 포스팅에서도 상세히 밝힌 바가 있다.

2010/12/08 불빛에 대한 단상 : 밤을 좋아하는 나는 야경에 약하다네

당고개 역에 울 집 아주 가까이 가는 17번 버스가 개통하면서
꽤나 드나들었던 시기인데
밤에 주로 집에 가니깐 이런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진 찍는데 소심해갖곤
주인 아주머니께 들킬세라 빨리 찍은 사진인데,

보면 볼수록 정말 따뜻한 느낌이 들어.






정말 전형적인 골목이 많이 존재하는 당고개 역 부근은
어쩐지 애잔한 느낌이 든다.
예전에 주택 살 때 생각도 많이 나고,

언제 당고개 역에서 꼭 소금구이를 먹겠다는 일념이 갑자기 생각나네_????




이 날이 제대로 기억났다.
17번 버스마저 놓쳐서 노원까지 걸어갔었던 날인듯.
가던 길에 찍었는데 배렸구만!

이 때 아주 열정적으로 운동을 하던 때라 걷는 것 쯤은 일도 아녔다.



이건 지하철 고가선로를 찍은 거다.
한참 있다가 기억났다.
방금 기억났다.
도대체 뭐지 싶었는데 그거였다.
아주 멋있을 거라고 생각한 야심작이었다.
결론은? 보시다시피 난해하다...





또 언젠가_인사동에서

기타를 수리하다, 언젠가 사라질 인사동을 새기다_




동생놈이 통기타 사오라고 난리를 쳐서 샀던 인사동 기타집이다.
사려 인사동 왔던 그 일요일, 마침 낙원악기상가가 휴무여서
할 수 없이 그 근처 기타집에서 샀던 것이었다.
그 흔한 튜닝기 하나 챙겨주지 않았고 가격은 오질나게 비싸게 받았던 미운 곳.
뭐 그 사실이야 늦게 알았지만, 할 수 없잖은가.

수리도 여기서 하기로 결정하고 바쁜 와중에 인사동을 들렀었다.
금방 된다길래 기타집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기타들 너머로 바깥이 보였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

곧 사라질 낙원악기상가처럼,
인사동도 깨끗해게 정비되고 현대화되겠지?
그건 인사동이 사라지는거다.
지명이 그대로여도 그건 사라짐에 다름아니다.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 자체가 유의미하다는 사단법인 문화우리적 생각으로
셔터를 눌렀다.
꽤나 기타들이 귀엽다.



이 사진은 뭔지 모르겠다.
도시를 찍은 것임엔 분명.






또 그 어느날_대학로에서

사랑이 어린 대학로 투썸_




남자친구한테 고백받은 날,
조판 끝나고 처음으로 갔던 장소.
그 날 외에도 같이 자주 갔다.

사귀기로 하기 전에도 꽤나 서로 좋아했기 때문에,
'우리가 사귄 지 1일 됐다는 게 그 전과 뭐가 다를까?'
생각했었는데
확실히 다름을 느끼게 된 곳이다.
'아 연애가 이런 느낌을 갖게 해주겠구나'
'남자친구라는 존재를 보고 있다는 건 이런 느낌이 드는구나'
알게 됐달까, 아무튼 꽤나 추억에 젖게 하는 곳이다.
그래서 찍었겠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어쨌든 사진의 인물은 나다.
찍은 기억은 없는데,..
남자친구가 찍어줬으려나?

여하간 망하긴 했어도 내 사진.
다음 롤은 사진같은 사진을 가져오겠